컴퓨터 수리
유명 컴퓨터 수리 업체의 수리기사들이 고장 난 컴퓨터를 더 망가뜨려 작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21억5800만원을 챙겨온 사실이 들통났다.
8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고객의 컴퓨터에 일부러 더 고장을 내거나 멀쩡한 부품을 교체한 뒤 수리비만 청구한 혐의로 유명 컴퓨터 수리업체 전 대표 이모 씨와 외근 수리기사 총괄팀장 문모 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현 대표 정모(32) 씨와 고객 컴퓨터를 고장 낸 수리기사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고장 신고를 접수한 콜센터 직원 등 6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회사 전체가 공모자였던 셈이다.
이들은 출장을 가면 "눈치껏 고객을 속이라"는 회사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 피해자의 눈을 피해 '부팅 방해 프로그램' 설치하기, 멀쩡한 부품 고장 났다고 하기, 송곳으로 연결단자를 찍어 고장 내기. 수리기사들은 이런 식으로 두 번, 세 번 고객의 주머니를 털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작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21억5800만원. 간판은 '컴퓨터 수리업체'였지만 실상은 '짜고치는 고스톱판'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덜미가 잡힌 건 "**119에 수리를 맡기면 컴퓨터가 더 고장 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업체 본사를 압수 수색했고, 출장 수리 및 청구 비용을 정리해놓은 장부를 보고 이들의 조직적 사기 행위를 적발해냈다. 바꾸지 않아도 될 부품을 바꿔서 이득을 냈을 때는 '가(假)교체', 부팅 방해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데이터 복구 비용을 받아냈을 때에는 '가복구'라고 적었다. 명시된 피해자만 1만300여명. 거짓으로 받아낸 수리비를 회사와 나눠 갖기 위해 수리기사들이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이 장부는 범행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이들은 개인 컴퓨터뿐만 아니라 병원·학교 등 서버도 망가뜨리고 다녔다. 경찰은 "삼성서울병원 등 병·의원 61곳, 서울대 등 교육기관 54곳, 법무법인 20곳도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부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수리비를 깎아주겠다"고 해 무마시켰고, 전문가가 상주하는 회사에 출장 갈 때는 제대로 컴퓨터를 수리해주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 탄탄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던 **119에는 PC 정비사 등 컴퓨터 관련 전문 자격증을 가진 기사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업계의 오랜 관행이라는 진술을 확보한 만큼 업계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