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고지기 선정 위해 수천억 협력사업비 불사 = 시?구?군 금고 유치전에서의 은행 간 과도한 협력사업비(출연금) 경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금고지기에 선정되면 은행들은 수십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관리할 수 있고 또 해당 지역민을 고객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자체는 전산시스템 구축 등의 문제로 기존 금고관리 은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한 번 금고지기로 선정되면 다음 유치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이에 은행들은 금고 선정전이 시작되기 6개월~1년 전부터 사실상 금고유치 준비 작업에 돌입한다. 특히 금고지기 당락을 좌우하는 출연금 규모를 놓고 치열한 눈치 작전을 펼치며 매번 과도한 출연금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2011~2013년 사이 금고 유치를 위해 제공한 은행권의 출연금 규모는 5000억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은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30점) △금고업무 관리능력(24점) △시에 대한 대출?예금금리(18점) △시민 이용 편의성(18점)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10점) 등 5가지 항목으로, 이 가운데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은 사실상 은행의 출연금 규모에 대한 점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신용도나 재무구조 등에서는 실제로 점수 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며 “지역사회 기여와 협력사업은 곧 지역 발전기금이나 지역 공헌사업, 행사 지원 등 돈이 필요한 곳에 대한 자금 지원을 의미하고, 사실상 출연금 액수가 금고지기 당락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올해 3월부터 금융회사가 업무 상대방에게 10억원을 초과하는 금전 및 물품 등을 제공할 경우 이를 공시토록 은행업 감독규정을 개정했다. 도를 넘은 출연금 경쟁이 자칫 은행의 수익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 국회의원 및 공무원 등에 대한 향응 제공 등 부정행위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안전행정부는 금고로 지정된 금융회사가 지자체에 출연한 협력사업비를 예산에 편성?집행토록 의무화하고 협력사업비 총액과 집행 내역을 주민에게 공개토록 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단체 금고 지정 기준’을 개정했다. 그간 일부 지자체장들이 협력사업비를 개인 쌈짓돈으로 사용해 온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광역자치단체장은 2010~2011년 금고관리 은행에 지자체 산하 스포츠 관련, 기술지원 기관 등에 30억8000만원을 직접 출연토록 한 바 있다.
◇ 은행권 하반기 서울시 구금고 쟁탈전 예고 = 올해부터 기초자치단체들은 금고관리 은행을 공개경쟁 입찰로 정해야 하는 탓에 또 한 번의 치열한 금고 쟁탈전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2012년 7월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에서 ‘기초자치단체가 금고를 선정할 때 광역자치단체의 금고 금융기관을 수의로 지정할 수 있다’는 항목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올 하반기 수천억원 규모의 서울시 구금고 유치전에서 다시 맞붙을 전망이다. 지난달 26조원 규모의 서울 시금고 선정 경쟁에서는 우리은행이 수성에 성공했다. 시중은행들은 현재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구금고 관리를 모두 맡고 있는 우리은행과의 구금고 쟁탈전을 준비하고 있다.
구금고 선정은 지난 1999년부터 공개경쟁 입찰이 가능해졌지만, 그동안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수의계약으로 시금고 관리은행을 구금고 관리은행으로 지정해 왔다. 지자체 규칙에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고 전산시스템 개발이나 시스템 연결 등 구금고 별도 선정으로 인한 번거로움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100년간 서울시 금고지기를 맡아 온 우리은행이 서울의 시?구 금고를 사실상 독점 관리하고 있다.
서울 시금고 은행이 서울시에 제공하는 출연금이 자치구에는 나눠지지 않아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치구가 많은 점도 구금고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은행 관계자는 “시금고보다 규모는 작지만 구금고 관리 은행으로 선정되면 금전적 이득을 얻는 것은 기본이고 한층 수월하게 은행 브랜드 홍보 및 인지도 향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자금은 크게 예산(일반?특별회계)과 기금으로 나뉜다. 현재 강남구와 용산구의 경우 기금관리는 신한은행에 맡기고 이에 따른 이자?출연금 혜택을 받았다. 지자체 ‘금고지정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각 금융기관에서 제출한 제안서 평가표를 기존에 운영 중인 금고와의 약정기간 만료 50일 전까지 구청장에게 제출해야 하고 또 금고관리 은행 변경 시 전산개발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반기부터 구금고 입찰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