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눈썰미가 남다르다는 소비자도 이 빨간딱지를 쉽게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해당 은행들이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조금이라도 눈에 덜 띄는 곳에 붙였기 때문입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통상 압류된 동산에 압류물을 표시하는 ‘빨간딱지’가 신뢰를 입에 달고 사는 은행 때문에 붙인 것에 한바탕 소동이 불거졌습니다. “오죽하면 영업점 입구에 빨간딱지까지 붙이겠냐”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해당 은행 입장에선 민원평가란 한정된 내용에서 5등급을 받은 건데, “마치 나쁜 은행처럼 보일 수 있어 금융당국의 처사가 너무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금융당국과 은행 간의 이해관계를 떠나 이런 현실이 참 씁쓸하기도 합니다.
세월호 아픔을 전달하는 뉴스에 가려 근 한달간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던 금융사고 이슈들이 살짝 비껴 있었습니다. 연초부터 흡사 오락실 두더지 게임처럼 각종 사건·사고에서 발전된 사태들이 내부통제 구멍에서 툭툭 튀어 올랐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에다 대출 사기사건, 허위증명서 발급, 고객 돈 횡령, 비자금 조성 등 어처구니 없는 사건·사고는 참 나쁜 은행이란 이미지를 한번 확실히 심었습니다. 당시 은행 창구에서는 소비자들의 분노로 일촉즉발의 분위기마저 연출됐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이 워낙 비극적인 참사이다 보니, 이런 금융 사고들이 한순간에 타임라인에서 증발했습니다. 은행들에겐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자성의 시간, 다시 한번 내부통제를 다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겠지요. 국민의 눈을 세월호로 묶어두고 얼마나 반성을 했을까요.
그러나 나쁜 은행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태로 드러난 유병언 일가와 관련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부실대출 행태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졌습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와 관계사들이 금융사로부터 대출받은 자금 중 90%가 은행에 집중됐습니다. 은행들은 대출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청해진의 부채비율은 2011년 278%를 기록했습니다. 청해진의 계열사인 온지구는 1억8000만원짜리 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9억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은행들의 허술한 대출 심사와 관리로 유 전 회장의 부실기업이 연명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했다는 얘기입니다. 서민들에게는 온갖 구실을 붙여 대출에 까다롭게 구는 문턱 높은 은행들의 실상입니다.
신뢰를 먹고 사는 은행 대문에 빨간딱지를 붙였다고 입이 나온 은행입니다. 금융 특성상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하면 존립 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백번, 천번 지당한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하는 행동을 보면 은행들이 섬기는 것은 ‘고객이 아나라 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은행이 밉다고 담을 쌓고 살 수 없는 ‘지금’, 빨간딱지 하나로 ‘여기’ 은행에 얼마나 큰 아픔을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