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년 케임브지리대학 역사상 최초의 ‘형제 교수’를 영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배출했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경제학)와 장하석 교수(과학철학)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처음 접하고 놀랍기만 했다. 학문적 영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도도하기로 이름난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형제 교수가 한국인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이들의 아버지인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인터뷰하면서 필자는 또 한 번 놀랐다. 장 전 장관의 연구실이 여느 학자의 책상보다 더 학구적이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 일어사전이 있었고 그 옆에는 영어와 일어로 된 경제 관련 책이 여러 개의 포스트잇이 붙여진 채 놓여 있었다. 일어는 독학으로 자유롭게 구사하며 일본 경제와 관련한 책은 아직도 일어원서를 본다. 가위로 오린 신문 사설들이 눈에 띄었는데 하나같이 주요한 내용 밑에는 밑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책이나 신문을 볼 때 밑줄 긋기는 오래된 습관인 듯했다. 옛말에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의 책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자세로 아버지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재식 전 장관은 자녀들에게 평생 밑줄 치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자녀들은 알아서 스스로 공부했다. 그는 또한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자의 길을 걸으면서 42살 때 경제학 박사(중앙대)과정에 다니면서 또 밑줄 치며 공부했다. 어쩌면 집안에서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만으로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는 셈이다. 장재식 전 장관은 작은 집에 2500여권의 장서를 보관해 오다 집이 좁아 1200권은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한편 장하석 교수는 영영사전으로 공부하면서 중학교 때부터 영어원서를 읽었는데 이게 영어 정복의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 더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어원서로 읽기 시작해 중학생 시절 이미 11회독을 했다. 한국어 번역본은 12회독을 했다고 한다. 장하석 교수는 영국 교수 못지않게 완벽한 문법을 구사하는데 그 비결은 바로 ‘영영사전으로 영어원서를 반복해 읽은 데 있다고 한다. 장하석 교수는 최근 EBS에서 ‘과학, 철학과 만나다’ 주제의 강의로 호평을 받고 있다.
장재식 전 장관은 1962년 결혼을 해서 1980년까지 20평 주택에서 살았다. 더욱이 국세청 차장 시절과 주택은행장 시절에도 20평의 작은 집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공부할 책상이 없어 밥상으로 대신했지만 그들은 자라 세계적 경제학자와 과학철학자가 되었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말처럼 말이다. 책상이 좋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