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하의 물꼬를 텄다. 앞서 그는 기준금리의 장기적 방향성을 인상으로 잡았다. 그러나 이달에는 세월호 사태의 여진을 주된 이유로 들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 했다. 또 향후에 성장과 물가가 더 내려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이 총재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었다는 분석이다. 결국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필두로 한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의 정책운신 폭이 더 넓어지게 됐다.
이 총재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로 14개월째 동결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성장 및 물가 경로에서 하방리스크가 상방리스크보다 우세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수정 전망치를 발표했다.
우선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4월에 내놓은 4.0%에서 3.8%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4.2%에서 4.0%로 내렸다.
이 총재는 성장률 하향 조정 이유에 대해 “세월호 사고 영향 이후 소비위축에 주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가 기존 3.1%에서 2.3%로 0.8%포인트나 하락했다.
그 외 설비투자(5.7→5.7%)를 제외하고는 건설투자(1.9→1.7%), 상품수출(6.5→6.1%), 상품수입(5.7→4.1%), 지식재산생산물투자(7.0→6.9%), 취업자수(50만→48만명) 등의 상승률이 모두 축소됐다.
반면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기존의 전망치인 680억달러보다 160억달러 상향된 840억달러로 예상됐다. 내년에는 70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올해의 경우 기존 2.1%에서 1.9%로, 내년 전망치는 2.8%에서 2.7%로 각각 내렸다. 소비자물가는 작년부터 물가안정목표치(2.5~3.5%)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무엇보다 이 총재는 간담회 내내 경기의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과 성장 회복세 속도가 완만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이 총재는 전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상 ‘깜빡이’를 끄고 경기판단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금리의 장기적 방향성은 인상에 뒀다. 하지만 이번에 인하 가능성도 새로이 제시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최경환 후보자가 사실상 한은의 금리인하를 요청한 상황에서 이 총재가 화답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 후보자는 지난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내수진작을 위한 추경과 금리인하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 총재가 이달에는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해 금리인하의 명분을 제공하고 다음달에는 인하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 총재가 명확히 금리인하 시그널을 준 것은 아님에 따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낮췄지만 이 수준도 잠재성장률 수준에는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통위가 이날 13개월째 이어진 만장일치 금리동결 기조를 깬 것도 눈에 띈다. 금통위원 7명 중 1명이 이날 인하로 추정되는 소수의견을 냈다.
실제로 금통위의 경기상황에 대한 인식은 후퇴했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자료를 통해 “수출이 호조를 지속했으나 세월호 사고의 영향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다”고 진단했다. 금통위는 5월까지만 해도 통방자료에서 ‘경기가 추세치를 따라 회복세를 지속한다’고 평가했으나 6월 ‘회복세가 주춤하다’로 바꿨고 이달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짙어졌다.
한편 지난달 23일 새로이 임명된 장병화 부총재는 이날 금통위에서 첫 데뷔전을 치렀다. 이에 따라 금통위는 7월부터 7명의 완전체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