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000억원 규모의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 사건이 발생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 등 핵심 의혹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회수되지 않은 2800억원 자금의 행방과 대출지원 세력, KT ENS 법인인감을 둘러싼 의혹 등 검찰과 금융당국의 수사와 조사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핵심 피의자인 전주엽 NS쏘울 대표를 검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핵심 피의자인 서정기 중앙티앤씨 대표와 김모 KT ENS 부장 등의 공판에서도 해외 자금유출, 도피 조력자 등의 의혹이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자칫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갖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법원에서 이들 피의자들에 대한 첫 선고공판이 진행된다. 금융감독원은 KT ENS 협력업체 부실 대출과 연루된 은행들에 대한 제재를 결정한다. 법원과 금융당국이 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 대출 사건에서 어떠한 진실을 규명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부실대출 누구 책임인가 =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와 임직원 등은 6년동안 세금계산서, 매출확인서 등 각종 서류를 위조해 하나은행, 국민은행, 농협은행과 13개 저축은행으로 부터 1조8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았다. 이중 2800억원은 상환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실적 위주의 은행권 영업 관행이 KT 자회사라는 것과 믿고 대출을 해 준 것이 발단이 됐다. 특히 은행의 부실한 여신심사시스템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고, 금융당국의 감독부실과 도덕적 해이도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실제 피의자들의 공판과정에서 저축은행들이 해당 기업들을 우량 고객으로 판단해 서로 대출을 하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협력업체들이 은행들과 포괄적 대출약정을 체결했고 은행들은 이를 매년 확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약정 체결 과정 전반에 대한 의혹과 함께 은행의 약정 체결 업체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드러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범 전 대표의 행방과 회수되지 않은 2800억원의 향방이다. 공판과정에서 많은 피의자들이 전 대표가 대출사기, 서류조작을 지시 했고, 상당수 자금이 전 대표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과 금융당국은 미회수금 중 일부는 돌려막기용 대출상환금과 운영자금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28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의 용도로는 설득력이 부족해 결국 전 대표를 검거하지 않으면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 핵심 주범 행방 묘연…배후 지원설? =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이번 대출사기 사건에 대해 비상식적인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은행들이 해당 업체들을 찾아가 대출을 권유하고 현장 점검없이 편의를 위해 대출구조(SPC) 등을 만들어 대출을 실행한 것 등은 의혹이 가는 부분이다. 이에 금융권과 정치권 등의 최고위층 인사의 개입을 의심해 왔다.
여기에는 핵심 주범인 전 대표의 행방이 묘연해 지면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깊어졌다. 현재 전 대표가 어디 있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 대표는 금감원 김모 팀장에게 조사 사실을 확인한 후 해외로 도피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전 대표는 홍콩에서 뉴질랜드 그리고 다시 남태평양 바누아투로 도주한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인사는 “경찰 수사 발표처럼 전 대표가 이 경로로 이동했으면 검거될 확률은 매우 높았을 것”이라며 “이들 지역은 국제 범죄자들이 도피 경로로 자주 이용하는 경로로 인터폴 등 수사망이 잘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대표가 이 경로가 아닌 다른 경로로 해외로 도피했거나 국내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 대표의 도피를 조력했거나 비호하는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금감원은 내달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KT ENS 관련 부실 대출 및 불완전판매에 대해 제재를 한다. 특히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경우 일정부문 책임 소지가 있는 정황이 발견돼 적어도 주의적 경고 등 경징계가 예상된다.
금감원은 KT ENS 부실 대출 및 불완전 판매에 대한 검사를 3주전에 마친 뒤 이달 말 제재심에 올리려고 했으나, 김 행장 추가 제재 등 민감한 사안이 걸려있어 내달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