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큰 고비를 겪은 A 증권사 직원은 최근 퇴근 후 방문해야 할 가게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건냅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동기, 후배, 선배 대다수가 퇴사 후 자영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구조조정으로 하림 주가만 오른다는 농담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싶기도 합니다.
금융권의 인력 구주조정이 한창입니다. 은행, 보험, 카드사 등 전 금융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인 분야가 바로 증권업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년째 이어진 증권업 침체로 이제 인력 구조조정은 증권업계에서 일상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한때 선망받던 '증권맨'은 이제 한파와 같은 구조조정 터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증권대금은 급감하는데 증권사는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0원에 수렴하는 수수료 경쟁으로 증권사 수익구조는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 업계 종사자는 결국 62개에 달하는 국내 증권사 가운데 치킨게임의 승자만이 증권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냉정한 분석을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철한 분석가라도 자신의 삶의 기반을 잃는 현실 앞에서 담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증권업계 구조조정 필요성이 힘을 얻을 수록 반대 급부로 증권업계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위로금에 희망퇴직 신청자가 줄을 잇는 사례도 있다지만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오히려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두번 상처를 입고 쫓기듯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지점통폐합을 결정한 B증권사가 그렇습니다. 대기업 계열의 중소형 증권사인 B증권사 직원들은 최근 회사 임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희망퇴직 인원이 예상치에 못미치자 차장, 부장급 등을 대상으로 임원들이 퇴직을 종용하는 전화를 돌렸다고 합니다. 일부 임원으로부터는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으면 대기발령을 내겠다는 취지의 협박 아닌 협박을 들었다고도 말합니다. B증권사 직원들은 이건 희망퇴직이 아니라 강제퇴직이라며 회사의 비인간성, 비도덕성에 두번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회사가 자발적인 희망퇴직이 아닌 강압적인 강제퇴직을 시키고 있다고 말입니다.
인력 구조조정, 증권업계의 공생을 위한 필요악과 같은 선택임을 어쩌면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의리는 서로에게 지켜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생 몸담은 직장을 떠나는 일, 적어도 인생의 한 챕터가 마감되는 선택만은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