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하락과 경기침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의 한국경제는 물가, 소비, 성장률 등의 측면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침체 직전과 상당부분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 전문가 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4%가 “한국이 일본의 장기불황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각종 경제연구소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물가가 가장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21개월 연속 1%대다. 1%대 물가가 이처럼 오랜 기간 이어진 것은 물가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2.3%로 예상했다가 최근 1.8%로 하향 조정했다.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2~3%는 돼야 경제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성장률은 과거 일본보다 좋지만 추세는 비슷하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평균 6%대였지만 2000년대 들어 평균 3%대로 낮아졌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3.4∼3.9% 정도다. 3%대 성장률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성장률 추세가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과 비슷한 궤적을 나타내고 있으며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 부진도 과거 일본과 유사하고 소비부진의 원인이 인구고령화와 부채 부담이라는 점도 일본과 비슷하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매우 낮아 디플레이션 우려가 상당히 커졌다”면서 “수요 부족 등으로 저물가가 유발됐다는 점에서 (한국이) 절반 이상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과는 다르다’며 호언장담하던 정부차원의 인식도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쪽으로 선회하는 등 이전보다 진지해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수차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언급하며 ‘과감하고 선제적 정책대응’을 강조한 것도 같은 경각심에서다.
정부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재정과 정책금융 등으로 41조원을 투입하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기로 했다. 한국은행도 이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종전의 2.50%에서 2.25%로 인하해 정부의 경기 부양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고령화 대비와 내수 부양을 위해 사적연금 활성화, 가계소득 증대 세제, 규제 개혁, 유망 서비스업 육성을 추진하는 등 전방위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