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회장에게) 실형 선고는 사형 선고와 다름이 없습니다.”
12일 오후 이재현(54) CJ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505호 법정. 서울고법 형사10부의 권기훈 부장판사는 이 회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이 회장은 두 눈을 질끔 감았다. 변호인단과 CJ그룹 관계자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4일로 예정됐던 항소심 선고가 이날로 미뤄지면서 실형을 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 회장 측의 기대가 한 순간에 꺾였다. 지난달 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범 삼성가가 뜻을 모아 이재현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2시 15분께 구급차를 타고 법원에 들어섰다. 휠체어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담요를 무릎에 덮은 이 회장은 한 눈에도 몹시 야윈 모습이었다. 바지 아래로 드러난 발목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법정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이 회장은 눈을 뜨지 못했다.
2시 35분부터 시작된 재판은 40여분 가량 이어졌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 회장은 종종 고개를 갸웃거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든 모습을 보였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된 혐의는 무죄로 바뀌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것 자체를 횡령으로 볼 수 없다며 횡령 혐의를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다. 또 조세포탈과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일부 무죄 판단했다. 감형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선고가 내려진 순간 법정은 짧은 정적이 흘렀다. 재판부는 △국내 차명주식 관련해 177억2000만원의 양도소득세 및 종합소득세 포탈 △해외 특수목적법인(SPC)을 이용한 40억6400만원 규모의 종합소득세 포탈 △부외자금 조성 관련한 33억1700만원의 법인세 포탈 △CJ 차이나 법인자금 78억8500만원 및 CJI 법인자금 36억2400만원 횡령 △일본 빌딩 매입 관련 이득액 675억990만원 배임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1일 구속 수감된 뒤 같은 달 18일 기소됐다. 그러나 신장이식 수술을 사유로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받았다. 1심의 징역 4년 선고에 이은 항소심에서 구속집행정지 기간 만료로 4월 재수감 됐지만 14일 만에 입원을 하는 등 건강 악화를 호소, 다시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2심 재판에 임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다시 구급차에 실려 법원을 떠났다. 사건을 변호한 김앤장 안정호 변호사는 “수형 생활을 감당할 수 없는 건강 상태”라며 “실형이 선고돼 안타깝다. 조만간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CJ그룹 측은 “법인자금 횡령과 관련 우리 측 주장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에 대해 환영하고,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그러나 건강 상태가 심각한데도 실형이 선고돼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경영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사업 및 투자 차질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상고심을 통해 다시 한번 법리적 판단을 구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