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리포트가 나오지 않는 진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중견 애널리스트의 대답이다. 올 초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매도 리포트’ 가뭄 현상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매도’를 권유하는 증권사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애널리스트들에게 ‘매도’란 사실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특정 기업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내놓으면 당장 탐방을 갈 수 없다. 더 나아가 기업 IR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애널리스트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물론 보고서가 얼마나 적중하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매도 의견 하나만으로 해당 애널리스트는 기업 내부 정보에서 원천 차단된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데는 개인투자자들이 매도의견을 받아들이는 인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개인투자자에게 주가는 무조건 오르는 게 선(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가운데 ‘매도’ 의견을 제시하면 ‘회사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매도 리포트를 강하게 거부하는 이유이자 더욱 금기시되는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의견을 ‘홀드(hold)’로 낮추고 목표주가를 현주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액션을 취한다. 시장의 불확실성, 경영환경의 변화 등과 같은 애매한 말로 ‘매도’ 의견을 대체하기도 한다. 투자 의견을 밝히지 않은 ‘NR(Not Rated)’ 리포트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 초 국내 한 증권사에서 조선업종에 첫 매도(Sell) 리포트를 내놓으면서 논란이 있었다. 한 제강업체에 대한 민감한 리포트가 증권사 리포트 제공 사이트에서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최근 한 증권사의 사장과 리서치센터장까지 나서서 소신있는 ‘매도’ 의견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매도 리포트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소신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도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일까?
소신도 필요하지만, 소신있게 매도 의견을 낼 수 있는 여건 조성이 더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