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주년/위기의 토종 사모펀드] 국내 사모펀드 도입 10년, 보장성 투자에 쏠린 돈… 빛바랜 모험자본 육성

입력 2014-10-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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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PEF 15개서 작년 265개로… 프로젝트 비중 68.9% 증가세·차입투자 낮아 도입 취지 퇴색

우리나라에 사모투자전문회사(PE)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정부와 기업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해 대거 구조조정에 나섰다. 우량 대기업들의 지분과 경영권은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렸다. 미국계 PE인 칼라일은 옛 한미은행을, 뉴브리지캐피털은 옛 제일은행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하지만 외국계 PE가 자금 회수 과정에서 ‘먹튀’ 논란을 빚었다. 편법과 탈법 시비도 끊이지 않았고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았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PE에 대한 인식은 ‘기업 사냥꾼’, ‘투기자본’과 동의어로 통용됐다.

이렇게 외국 투기 자본에 의해 국부가 유출된다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을 개정(5조 2항), 사모투자전문회사(PE) 제도를 도입해 토종자본 육성에 나섰는데, 이것이 국내 사모투자전문회사(PE)와 사모펀드(PEF)의 시작이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외환은행, 제일은행 등 외국계 사모펀드가 자본력을 투입해 부실 기업들을 사간 뒤 되파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자본 공급자가 있어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긴 것”이라며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내 토종 사모펀드 1호 보고펀드”라고 말했다.

국내 PEF는 2004년 12월 국내에 처음 도입된 후 10년 만에 자본시장의 한 축이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구조조정 여력이 없는 기업을 대신해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역할까지 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도 규제완화 카드를 빼내며 PEF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결과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PEF 수는 초창기 15개에서 지난해 265개까지 대거 늘어났다. 펀드를 설정할 때 금감원에 제시한 목표 투자액인 출자약정액도 4조7000억원에서 47조5000억원으로 확대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PEF 운용사로는 MBK파트너스, 보고펀드, 미래에셋자산운용, IMM인베스트먼트 등이 대표적이며 기업 인수합병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불어난 덩치만큼의 역량을 갖췄는지 여부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3년 사모투자전문회사 동향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12년 본격화됐던 대형 블라인드 PEF 운용자들의 자금모집이 지난해 상반기 마무리되면서 작년 PEF로 유입된 자금 규모는 7조4000억원으로 전년(9조7000억원)과 비교해 23.7% 감소했다.

게다가 보장성 투자 비중이 급증하면서 PEF의 전문성이 퇴색됐다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이른바 모험자본 육성이라는 PEF 도입 취지가 변색되고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모집하는 자금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부채는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그러나 ‘자본’은 파트너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사모펀드의 인수금융을 모험자본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세계경제가 성장하면서 과거와 같이 은행 차입을 끌어들여 투자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이에 사모펀드, 즉 부채가 아닌 자본을 통한 투자가 생겨났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험자본이 아닌 보장성 투자 개념의 프로젝트 PEF 비중은 2010년 39.1%에서 지난해 68.9%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 프로젝트 PEF는 투자 대상을 정한 뒤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대규모 자금을 조성하는 블라인드 PEF와 명확한 차이가 있다.

차입투자 비중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237개 PEF 중 차입투자를 한 PEF는 50개로 전체의 21.1%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PEF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자본의 300%까지 차입투자가 가능하도록 허용했지만 보수적인 자금 조달 및 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내 PEF는 3~5% 수준으로 낮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자금 운용에 쏠리는 등 PEF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프로젝트 PEF는 운용 전문성이 중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모험자본으로서 PEF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성 강화가 요구되며 이를 위한 감독환경을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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