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달러·엔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10엔을 돌파하며 엔화 가치 하락 여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엔저 효과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에 엔화 가치 급락은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전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장중 110.09엔으로 지난 2008년 8월25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6년 만에 처음으로 110엔대 밑으로 떨어진 셈이다. 엔화 가치 하락이 그간 일본 경제 회복세를 지탱하는 축이 됐으나 이 같은 급락세가 이어진다면 수입 물가 급등으로 서민 경제에 직격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음료업체 아사히그룹은 11월부터 수입 판매하는 버건디 와인값을 인상하기로 했으며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을 개발한 업체로 유명한 니신식품도 제품 가격을 1월부터 올릴 예정이다. 커피 원두 공급업체 UCC우에시마도 11월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다. 모두 수입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물가가 급등하게 되면 가뜩이나 소비세 인상으로 수요가 주춤해진 상태에서 일본 소비지출이 줄어들어 결국 아베노믹스도 흔들릴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소비세를 종전 5%에서 8%로 전격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가 20년간 침체에 빠져 있던 일본 경제를 끌어올려 회복세를 유지하려면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지출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60%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소비세인상 여파와 함께 엔저 수혜를 입은 기업들이 물가 상승률에 맞는 임금 인상을 하지 않으면서 일본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더욱 팍팍해졌다.
실제로 일본 슈퍼마켓 매출은 소비세 인상 이후 8월까지 5개월 연속 하락한 반면 8월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임금은 전년대비 2.6% 떨어졌다. 이는 14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것이다. 이즈미 드발리에는 HSBC 일본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소비 전망에 대해 매우 경계해야 한다”면서 “소비세 인상으로 각 가정마다 구조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대표는 지난 9월 29일 “엔 약세가 심화한다면 일본 경제에 부정적 여파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엔화 가치 하락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션 캘로우 웨스트팩 환율 전략가는 “지금까지 너무 빨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정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