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돋굴만큼 악하지만 이상하게도 매력이 있다. 올해는 연민정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이유리는 ‘왔다 장보리’ 속 악녀 '연민정'을 만나 데뷔 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단숨에 ‘광고계 블루칩’으로 등극했으며 2014년 연기대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TV드라마에서 악녀의 인기가 높아졌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악녀는 착한 주인공을 이유없이 괴롭히는 단순한 악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배신을 당하거나, 신분상승을 위해 변신할 수밖에 없는 악녀들이 등장했다. 점점 악녀들은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발전해나갔다.
‘인어아가씨’에서 다면적 악녀의 원조를 보여준 배우 장서희는 14일 열린 KBS2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이제는 악녀가 환영 받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원조 악녀가 인정할 만큼 이제 악녀는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역할이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악녀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악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 악녀들은 악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배경이나 캐릭터 속 관계, 상황으로 설명하며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오히려 답답하게 착하기만한 주인공보다 그럴법한 사연을 품고 있는 악녀들이 시청자들에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악녀들의 욕망이 안방이 아닌 세상으로 바뀌면서 공감을 얻는 점도 있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21세기 악녀들은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악(惡)하게 노력한다. 악녀의 행동은 한 인간이 무한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악녀의 모습에 자신을 몰입하면서 공감과 대리 쾌락을 느낀다.
현실에서도 답답하게 착하기 만한 캐릭터보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악녀가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욕하면서도 악녀에게 자꾸만 더 눈길이 가고 끌리는 것은 아마도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