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유출이다”, “정상적인 투자 수익으로 인정해야 한다.”
외국인 지분이 많은 금융회사들의 고배당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이후 금융사들의 수익이 크게 감소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졌지만 일부에서는 성과급에 이어 고배당 잔치까지 벌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금융사들의 고배당을 막기 위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배당은 국내 금융회사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반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외국인 주주비율 높을수록 고배당 = 금융사들의 고배당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일부 금융사들은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배당을 실시하면서 금융당국과 매년 갈등을 빚어왔다.
금융사의 고배당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외국인 주주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 가운데 하나금융이 70.1%로 가장 높고 신한 64.5%, KB 63.5%를 기록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를 넘고 있는 것이다.
우리금융을 제외한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높은 금융지주들은 배당성향도 높다. 2010∼13년 실적 기준으로 신한금융지주는 배당성향이 16.8∼20.5%를 나타냈고, KB금융지주는 11.3∼18.7%, 하나금융지주는 6.3∼14.0%를 기록했다.
배당성향이란 당기순이익에 대한 현금배당액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벌어들이는 돈의 많은 비율을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외국인이 지분을 100% 보유한 금융사들의 경우 ‘국부 유출’ 논란에 시달릴 만큼 높은 배당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최근 고배당 논란에 불을 지핀 SC금융의 경우 2012년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는데도 배당금은 오히려 2011년 810억원에서 2012년 1220억원으로 늘었다.
씨티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씨티은행은 경영자문료·전산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해외용역비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해외용역비로 2013년 당기순이익의 절반에 해당하는 1390억원, 2012년 초에는 배당으로 875억원을 본사에 송금했다. 씨티 노조가 추산한 본사 이전자금은 지난 9년간 약 7541억원에 달한다.
외국계 보험사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ING생명은 지난해 순이익(1878억원)의 42.6%에 이르는 800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했다.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하기 전 배당을 실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푸르덴셜생명은 지난해 거둔 1835억원의 당기순이익 가운데 650억원(35.4%)을 현금 배당으로 지급했다. AIA생명은 지난 5월 ‘영업기금’으로 250억원을 홍콩 본사에 송금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835억원)의 30%에 해당한다.
◇국부 유출과 권리행사 의견 맞서 = 외국계 은행의 높은 배당성향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건전성 문제를 두고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원칙적으로 기업의 적법한 배당을 막을 수는 없지만 금융산업의 경우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과도한 배당은 당국이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국부유출 규제 차원에서 해외 본사에 대한 비정상적인 용역비 지급이나 과도한 배당 시도를 금융당국이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금융사들의 고배당을 제재할 만한 명분이 없는 상태다. 특히 정부가 투자 활성화와 소득증대 차원에서 기업들이 사내에 유보금을 쌓지 말고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발표해 난처한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도한 배당이나 용역비 등으로 금융사 건전성에 지장을 주거나 과정상 편법 소지가 발견되면 몰라도 금융당국이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다만 고배당이 은행 건전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일정 부분 조치는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주라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배당을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계 은행 역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C금융 관계자는 “SC금융은 지난 2005년 옛 제일은행을 인수한 이후 현재까지 9년 반 동안 약 4조6000억원을 한국 시장에 직접 투자했다”며 “같은 기간 동안 영국 본사에 배당한 금액은 이번 중간배당을 포함해 총 4510억원인데 이는 연평균 투자수익률로 약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진회 신임 씨티은행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씨티은행의 배당성향이 낮았기 때문에 배당 여력은 굉장히 높다”고 우회적으로 고배당 논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