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등록된 상표라도 다른 사람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상표는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이로써 '여우머리' 도안을 놓고 4년간 저작권 분쟁을 벌인 미국 스포츠 장비 제조업체 '팍스 헤드'는 도안을 독점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그림 참조: 왼쪽이 팍스헤드사 저작물 여우머리, 오른쪽이 국내 폭스코리아 상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지난 11일 팍스 헤드가 폭스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저작권침해금지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상표를 구성하는 도형이라도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저작권법상의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팍스헤드 사의 '여우머리'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여우의 머리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여우 머리로 그려져 있어 창작자 나름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돼 있다"며 "이는 다른 저작자의 기존 작품과 구별되므로 여우머리 도안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여우머리 도안이 팍스코리아 상품의 출처표시를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사정은, 저작권을 보호하는 데 장애사유가 될 수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설립돼 산악 자전거 등을 판매하는 팍스헤드는 1990년 중반부터 여우머리 도안과 'FOX' 영문을 형상화한 그림을 카탈로그 등에 사용해왔다. 2007년 국내 의류판매업체 '폭스코리아'의 이사인 오모씨는 여우 머리를 형상화한 표장의 국내 상표권을 등록했고, 당시 팍스헤드는 상표등록 무효심판을 제기했으나 특허심판원은 해당 도안이 국내에서 유명한 상표로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팍스헤드가 소송을 내자 폭스코리아 측은 "폭스헤드사가 저작물이라고 주장하는 여우머리와 폭스코리아의 도안은 다르고, 같다고 하더라도 이미 상표권 등록을 마쳐 정당한 상표로 사용해왔다"고 주장했다. 1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등록을 통해 공시되지 않은 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된다는 점만으로 정상적으로 등록된 상표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베른협약에 따라 개정된 저작권법은 1996년 7월1일 이전에 창작된 외국인의 저작물도 보호한다"며 "폭스코리아 이사 오모씨가 국내 상표권을 등록한 날보다 팍스헤드의 저작권이 수년 먼저 등록됐으므로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