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학 라인의 에이스를 누르고 홍보부장으로 전격 발탁된 ‘나’. 이변 인사의 흥취도 잠시, 밤새워 준비한 업무 계획을 들고 당당하게 출근했지만 내 책상이 없어졌다. 도대체 왜?”
재벌총수를 모델로 한 소설 ‘돈황제’를 펴낸 소설가 백시종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이 재벌의 비정함에 주목해서 쓴 장편소설 '팽'을 펴냈다. 작고한 모 그룹 명예회장을 정조준한 ‘돈황제’의 후속편 격인 작품이다.
‘팽’은 승진한 다음날 아침에 파면당한 명광그룹 홍보부장 박종산의 이야기로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재계 서열 1위의 명광그룹 홍보부 차장인 주인공 ‘나’. 회사에서 최고 권력을 자랑하는 엠비유 라인의 경쟁자를 제치고 홍보부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부장에 오른 지 하루 만에 회사로부터 파면을 당한다.
황당한 ‘나’는 왕 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하지만 계열사 사장들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오너를 바로 만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비서실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파면’의 배경에 왕 회장의 명령으로 그가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조애자가 있음을 예감한다.
소설은 ‘토사구팽’을 일삼는 재벌 회장 등 재벌가 최상위층의 부도덕을 질타한다. 소설의 부제도 ‘필요할 땐 다급하게,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다.
“어쩔 수 없어. 당신이 회장님 방패막이로 나서 줘야겠어. 무조건 아니라고 우겨.(109쪽)……당신이 나 대신 뒤집어쓰고 들어가야겠어. 내가 뒤처리 잘 할 테니, 휴식하는 셈치고 고생 좀 해, 응? 서울 집이나 가족은 다 나한테 맡기고.(149쪽)”
그러나 인색하기 짝이 없고, 부하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인 왕 회장도 심복이었지만 “군주를 철저히 이용했던” 엠비유의 배신을 당한다.
“엠비유 비서들 말 못 들었어? 엠비유가 늘 얘기했다는 거 아냐.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하지만 아무렴 엠비유 욕심에 서울시장이 꿈이겠어? 서울시장을 징검다리 삼겠다는 작전 아닐까 하는 예측이 가능한 거지.”(263쪽)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토사구팽과 배신으로 얼룩진 이야기들이 씁쓸함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