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산의 대부분을 토지에 투자하는 나라, 생산적 투자보다 토지에 대한 투자가 수익을 보장해주는 나라, 신용보다 토지를 담보해야 대출을 얻을 수 있는 나라, 심지어 기업들까지도 자금조달을 위해 토지를 앞다투어 매집했던 80년대 후반의 일본을 그렇게 평가했던 것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는 이미 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금본위제를 포기했는데, 아직도 경제가 현물가치인 땅값에 묶여 있는 일본은 반드시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지금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굳이 다른 것을 찾자면 일본의 부동산 문제가 주로 토지라면, 한국의 부동산은 땅보다 집이 문제라는 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신화 붕괴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 전셋값이 집값의 70%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심지어 집값의 90%를 넘는 전세집이 나온다고 한다. 전셋값이 집값의 50%에서 70%로 상승했다는 것은 전세가와 대비할 때 집값이 30% 정도 빠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택의 실질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주택의 실질가치 하락이 앞으로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현 제도 하에서는 어떤 충격도 결국 세입자에게 재앙이 미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임대차시장의 절대 강자는 집주인이고 세입자는 절대 약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실질가치의 하락이 집값 하락이 아니라 전셋값 상승이나 고율의 반전세 전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사실 일본만 해도 우리의 임대차보호법에 해당하는 ‘차지차가법’으로 주택과 상가에 대한 임차인의 권리를 상당 수준 보호하고 있다. 일본의 세입자들은 주택의 경우 최소 4년간 임차권을 보호받고 있고, 100년 넘은 임대점포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총 가구수 절반에 가까운 900만 가구의 집 없는 서민, 중산층이 불과 2년밖에 임차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700만 영세자영업자들은 5년밖에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집주인들이 받게 될 손실을 아무런 대책 없이 서민, 중산층,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이미 부동산 신화 붕괴의 터널로 들어서기 시작했는데도 정부는 과거 정책들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싸게 돈 빌려줄 터이니 빚내서 집 사라,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식의 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집값과 전셋값이 근접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부동산의 늪’에서 건져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마침 국회가 여야합의로 서민주거복지특위를 구성해서 전월세대책과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보호제도의 개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3일엔 이 특위가 주거복지기본법 제정에 대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늦었지만 기울어진 임대차계약관계의 균형을 잡아서 제대로 된 주거복지가 실현되고, 우리 경제가 ‘부동산의 늪’에서 마침내 벗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