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주전산기 전환사업을 둘러싸고 세상에 드러내 보인 KB금융그룹의 내분은 한국 금융사의 지배구조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인지 KB사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올해 금융지주사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배구조의 핵심이라 여겨지는 사외이사 선임, 경영승계프로그램 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사외이사 구성안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모범규준까지 발표할 정도다. KB사태를 키운 것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이사회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KB금융 사외이사는 KB금융 이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할 뿐 아니라 회장 후보를 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사회의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역할에는 소극적이었다. 2013년 말 임영록 전 회장이 지주 사장직을 폐지해 권력을 집중시킬 때도 이사회는 의미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내부갈등 상황에서도 그룹의 컨트롤타워로서 핵심 역할을 했어야 할 이사회와 사외이사들은 ‘수수방관’했고 갈등을 더욱 키웠다.
결국 외부에서 들어온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주요안건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KB금융은 지주체제로 출범한 2008년 9월 이후 잦은 CEO교체로 불안한 지배구조를 보였다. 6년 4개월 동안 5명의 CEO를 배출했으며 현재 윤종규 회장의 재임기간을 제외하더라도 CEO 평균 재임기간이 1년 7개월에 불과하다. 외부에서 온 CEO가 선정되는 과정에서도 온갖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더욱이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달고 내려온 이들은 금융당국과의 갈등 속에 징계를 받았다. 김정태 전 은행장과 황영기 전 회장, 강정원 전 은행장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은행장도 중징계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이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외풍을 이겨내고 선임된 유일한 경우라는 얘기까지도 나올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KB금융 지배구조의 핵심은 정관계의 외압을 이겨내는 독립경영으로 꼽힌다. 다만 아직까지 외풍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B금융지주의 사장직 부활과 관련한 정치권의 ‘관심’이 그 예다. 윤 회장은 연초 지배구조 개선안의 일환으로 KB금융지주 사장직을 부활시키는 방침을 밝혔다. 전임 회장이 지주 사장직을 없애고 국민은행장을 지주 등기이사에서 제외함으로써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지주회장이 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지주 사장직을 부활시켜 권력을 분산하려는 의도였지만, 정치권에서 그 자리를 두고 지대한 관심을 보이자 사장직 부활을 보류키로 했다.
KB금융지주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 최종 후보 7명을 확정했다.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부소장, 최운열 서강대 교수,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 김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이병남 LG인화원 원장,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 등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새로운 사외이사가 소액주주들의 추천을 받아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CEO를 직접 평가하는 과정에 주주가 참여토록 하자는 움직임이다. 그동안 기존 사외이사들이 신임 사외이사를 뽑는 방식에서 1% 이상 주주에게 추천 권한을 부여한 것은 이사회에 주주의 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한 진일보한 방식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주추천 과정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주주ㆍ헤드헌터ㆍ내부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사외이사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지배구조 관련해서 외국인 주주들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회사가치에 부담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낙하산 인사가 내려와서 금융사 CEO가 2년 동안 평균 5명이 바뀌는 그런 상황은 외국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며 이렇게 되면 추천한 사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희진기자heejin@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