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시의 대표적인 작가 서정주 시인이 탄생 한지 100주년 되는 해이다. 서정주는 1915년 5월18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에서 출생했다. 호는 미당(未堂)으로 ‘조금 모자란 사람’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어 서정주의 소박함을 잘 표현한 듯하다. 서정주는 우리말을 가장 능수능란하고 아름답게 구사한 대표적인 천재시인이다. 또한 68년 동안 쉼 없이 창작활동을 했고 진정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시인으로도 평가된다. 하지만 서정주의 생애를 논할 때면 따라붙는 친일행적의 꼬리표가 늘 아쉬운 대목이다. 시인 김춘수도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 라는 글로 미당 시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28일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1071-11번지에 자리한 서정주 시인의 집을 찾았다. 이 집은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는 단군신화를 따서 봉산산방(蓬蒜山房)이라고 서정주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서정주가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간 마지막까지 시를 쓰고 구상했던 창작의 산실로 큰 의미를 지닌다. 서정주의 죽음 이후 한동안 방치돼 오던 이 집은 관악구가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2008년부터 복원에 나서 2011년 시민의 품으로 가게 됐다.
서정주의 집은 주택가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골목은 일방통행로로 되어있고 주차공간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는 편이 집 찾기가 수월하다. 랜드마크인 사당초등학교를 끼고 뒤편으로 돌아가면 ‘서정주의 집’ 파란색 간판이 있는 2층 단독주택이 나타난다. 문 앞에는 특이하게 서정주가 직접 심은 2층 높이의 소나무 한구루가 이집을 지키는 장승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서정주는 집 앞 마당을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 했다. ‘사군자를 비롯해서 소나무, 모과나무, 살구와 감과 대추나무, 산수유나무, 각종 철쭉꽃들과 풀꽃, 붓꽃과 상사초 등 눈에 띄는 대로 사들여와 강과 산에서 캐 온 바위들과 되도록 잘 어울리게 조경 했다. 시인의 집을 방문한 날도 산수유나무에 노란 봄꽃이 드문드문 피어올라 마당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 했다. 산책을 좋아한 서정주는 마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아침마다 자신의 정원을 거닐며 전 세계 산 이름 1625개를 암송했다.
건물 안 1층으로 들어서면 거실과 방 그리고 주방이 위치해 있다. 서재에는 멋쟁이 시인의 패션 감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옷 모자 가방 지팡이가 전시되어 있다. 맥주를 좋아한 시인의 주방식탁에는 맥주 캔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왠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2층에 올라가면 서정주 시인의 동상과 세계여행에서 구입한 소품 및 생필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서면 하얀 백자와 함께 시를 쓰며 고뇌한 창작 공간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이 집에 서정주의 유품은 50년간 간직해온 시 창작노트부터 아내의 손톱을 깍아주던 손톱깎이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수효가 방대하다. 시인의 집이 복원되면서 미당시문학관 옮겨졌던 유품중 일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동국대학교가 도서관에 보관중인 유품들 가운데 60여점을 다시 기증 받아 더욱 많은 볼거리를 제공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