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하면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날개’ ‘오감도’ 등 당대 문화판을 뒤흔들었던 이상이 푹 빠진 이 여인은 23세의 이혼녀였다. 빼어난 외모와 지성을 갖춘 신문기자로 청년 문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모양이다. 시인 백석을 포함해 많은 문사들에게서 구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연서에 담긴 뜨거운 마음을 최정희가 받아들이지 않아서였을까. 이상은 이 편지를 쓰고 2년 뒤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최정희는 ‘국경의 밤’의 시인인 김동환과 결혼해 지원·채원 자매를 낳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두 딸은 소설가로 데뷔,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지난해 여름 공개된 이상의 연서를 보면서 ‘글씨를 좀 더 잘 썼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글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휘갈겨 쓴 듯 보였기(지극히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괴발개발까진 아니지만 문학 천재에 대한 기대를 다소 떨어뜨린 건 사실이다.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괴’는 고양이의 옛말로, 지금은 속담에만 남아 있다. 자발없이 날뛰는 고양이나 개의 발자국 같은 글씨라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 즉 알아보기 힘든 글씨를 이르는 말이다. 개발새발(개의 발과 새의 발)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원래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던 말이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자 국립국어원이 2011년 표준어로 인정했다. ‘개발쇠발’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고양이, 개, 새에 비해 온순한 소는 날뛰는 일이 드물다.
‘소’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이나 나날을 비유적으로 얘기할 때 많은 이들이 ‘새털같이 많은…’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때의 ‘새털같이’는 바르지 못한 표현이다. 몸집이 작은 새한테 털이 많아야 얼마나 있겠는가. 머리 부위에 털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독수리’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좀 더 몸집이 크고 털이 많은 짐승을 생각해 보자. 그래야 ‘하고많음’의 표현에 적합할 것이다. 바로 소(쇠)다. 즉 ‘쇠털같이 많은…’이 바른 표현이다.
글씨는 그 사람의 성품과 성격이라고 했다. 그래서 좋은 글씨를 보면 사람까지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글씨 형태가 제각각인 것도 글쓰기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특히 손글씨엔 글쓴이가 생각을 타래질하는 순간이 담겨 있어 참으로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