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골퍼에게 미움 받는 녀석이 있다. 디보트(Divotㆍ골프 스윙 중 클럽 헤드에 의해 패인 잔디)다. 디보트는 환히 웃던 골퍼도 한숨짓게 하는 마성을 지녔다. 18홀을 라운드 하는 동안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핸 디보트와의 악연을 자주 목격한다. 비운의 주인공은 스테이시 루이스(30ㆍ미국)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 베어트로피(최저타상) 등 3관왕에 올랐지만 올 시즌은 불운의 연속이다. 수차례 우승 기회를 한국(계) 선수들에게 내주며 9개 대회 동안 단 한 차례의 우승도 일구지 못했다. 거기엔 ‘디보트 불운’도 한몫했다.
지난달 23일(한국시간) 끝난 JTBC 파운더스컵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김효주(20ㆍ롯데)와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18번홀(파4) 티샷한 볼이 디보트 안에 들어가 세컨샷을 핀에 붙이는 데 실패했다. 결국 우승컵은 김효주가 가져갔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동갑내기 친구 브리타니 린시컴(미국)과의 연장 세 번 째 홀에서 친 세컨샷이 다시 디보트 안에 들어가는 불운을 겪었다. 결국 루이스는 우승을 놓쳤고, 눈물을 흘리며 대회장을 떠났다.
야구에선 ‘한 경기에서 병살타를 세 차례 당하면 그날 경기는 반드시 진다’는 속설이 있다. 축구엔 악명 높은 골대 불운이 있다. ‘한 경기에서 골대를 두 번 맞히면 반드시 패한다’는 오래된 징크스다. 이만 하면 골프에도 ‘디보트 불운’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디보트 안에 들어간 볼을 불운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요소가 많다. 야구에서의 병살타와 축구의 골대 징크스와 달리 타인에 의해 발생한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골프 규칙 ‘에티켓 7항’에는 ‘패어진 잔디는 스스로 수리하고 원상 복구시켜야 한다’고 나와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떨어져나간 잔디 조각을 주워 메우고 밟아줘야 한다. 물론 원상 복구를 시키지 않더라도 벌타는 없다. 그래서인지 경기 후 페어웨이에는 ‘임자 없는 디보트’가 흉측하게 방치돼 있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방치한 디보트가 때로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걸 루이스를 통해 확인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도 골프의 일부’라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 반대다. 골프 규칙에 디보트 흔적을 스스로 메우라는 조항이 명기돼 있는 만큼 디보트를 수리하는 일이야 말로 플레이의 일부다. 야구에서의 병살타와 축구의 골대 징크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코리아 군단의 맏형 최경주(45ㆍSK텔레콤)는 기부를 통해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그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는 돈으론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자신의 성적에 상관없이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엔 늘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디보트는 스스로 메운고, 환호하는 사람들에겐 빠짐 없이 답례를 한다. 그에겐 그 모든 것이 골프 플레이의 일부란다.
루이스가 올 시즌 흘린 두 번의 눈물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종해버린 사회가 안긴에게 안긴 잔인한 상처다. 척추측만증을 극복하고 통산 LPGA투어 11승을 이룬 루이스의 땀과 눈물을 ‘디보트 불운’이란 말로 위로하기엔 부족함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