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가 사실상 파탄된 경우, 책임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다음달 26일 혼외자를 둔 남성 백모 씨가 법적 부인 김모 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1976년 김 씨와 결혼한 백 씨는 외도를 통해 1998년 혼외자를 두게 됐다. 백 씨는 2000년 집을 나와 혼외자를 낳은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고, 10여년 간 김 씨에게 자녀 3명의 학비를 부담하고, 생활비도 달마다 100만원씩 지급했다.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 씨는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백 씨는 강제로 이혼을 시켜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백 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법원이 취하고 있는 '유책주의'에 따른 결론이었다.
유책주의는 부부 당사자 중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이 없는 쪽에만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백 씨의 사례에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은 김 씨이고, 외도 책임이 있는 백 씨는 청구할 수 없다. 반면 객관적으로 부부관계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인정된다면 책임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 파탄주의다.
우리 법원은 유책주의를 취하고, 다만 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가 단순히 보복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이혼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음달 26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공개변론은 대법원장 외 12명의 대법관이 참석해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백 씨와 김 씨의 소송대리인들이 나서 진술하고, 참고인 진술이 이어진다. 백 씨는 장순재 변호사가, 김씨는 박경환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 참고인으로는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이 나설 예정이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공개변론을 열면서 법조계에서는 유책주의를 고수하던 법원이 입장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변론 과정은 법원 홈페이지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한국정책방송(KTV)를 통해 생중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