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화학협회는 우리나라 화학산업을 대표하는 단체로 협회장은 2년 임기의 비상근 명예직이다. 석유업계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본다면 “누구나 원하는 자리일 텐데 왜 공석이지?”,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장에 추대됐는데 왜 결단까지 필요하지?”라고 생각할 법하다.
사실 협회장 인선은 이전에도 수월하게 진행됐던 적이 드물다. 한 화학회사 대표는 협회장에 나섰다가 외국계 합작사라는 이유로 거부됐다. 또 송사에 연루돼 포기한 CEO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오너이기 때문에 협회장에 부적합하다는 평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번 18대 회장 인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협회장을 돌아가면서 맡았던 업계 빅4 대표 중 LG화학 박진수 부회장은 회사 경영에 충실하겠다며 고사했고,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경영권 분쟁 등으로 협회장을 맡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17대 협회장인 방한홍 한화케미칼 고문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연임이 불가능해 최종적으로 협회장이란 ‘계륵’이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게 넘어갔다.
이렇듯 협회가 출범한 지 40년 만에 사상 초유의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될 위기에 놓였던 것은 그 누구도 ‘총대’를 메기 싫어했다는 데 있다. 업황도 나쁜데다 시기적으로 업계를 대표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자리다 보니 마땅히 나서려는 CEO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 석유화학업계는 탄소배출권 시행을 비롯해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등 정부와 풀어야 할 민감한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석유화학협회 회원사 36곳 중 16곳은 지난 2월 정부의 탄소배출권 할당량이 부당하다면서 서울 행정법원에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또 지난 1월부터 시행된 화평법과 화관법으로 석유화학 업계는 비용 부담 및 정보유출 가능성 등의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산업계의 화학물질 취급 지침을 담은 법으로, 화평법에는 국내에서 제조·수입되는 모든 신규 화학물질과 연간 1톤 이상의 특정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심사·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화관법에는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처벌 규정이 포함됐다.
여기에 주요 수출국의 자급률 확대와 공급과잉,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 환율 및 유가 등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영 환경에 놓이면서 주요 회원사는 지난해 영업이익 감소를 경험했고, 이들 회원사의 CEO는 회사 정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협회장 직이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는 동안 석유화학협회 역시 업계의 외면을 받기에 이르렀다. 업계는 협회를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익단체로 보지 않고, 정부나 기관의 필요에 의해 정부기관으로부터 직·간접 지원을 받는 ‘관변단체’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허수영 사장의 협회장 취임을 계기로 협회가 ‘한국석유화학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며 석유화학에 관한 정책의 입안 및 수행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