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민 여러분, 간첩들이 유포하는 유언비어를 믿지 마십시오. 유언비어를 날조하거나 유포한 사람은 체포하겠습니다.” 정부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유언비어 유포 사범 단속 방침과 박근혜 대통령의 유언비어 대응 천명은 1980년 5월로 기억의 시계를 돌려놓는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계엄군에 의해 고립됐다. 정국을 주도한 계엄사는 왜곡된 정보로, 언론은 조작 기사로 광주의 진실을 은폐했다. 고립과 은폐 속에 울리는 총성은 시민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도한 시민들은 입에서 입으로 광주의 진상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하지만 그 유언비어에는 민주화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광주의 비극을 알리고자 하는 절규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계엄사는 “간첩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라고 주장해 체포 운운하며 극단의 공포정치를 펼쳤다. 난생처음 ‘유언비어’에 대한 느낌과 실재를 온몸으로 절감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라는 원래 의미 외에도 사회의 감수성과 현실에 드러나지 않는 국민의 또 다른 여론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급증하고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메르스에 관련한 유언비어와 괴담이 입을 통해, 인터넷과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괴담과 유언비어의 유통으로 불안과 공포 역시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과 경찰은 ‘메르스 유언비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메르스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국민은 코웃음 친다. 국민은 유언비어보다 정부의 정보 독점과 통제가 불안과 공포를 더 부추긴다고 말한다. 유언비어의 유발자는 다름 아닌 메르스 발생과 확산 과정에서 무능과 무지로 일관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르스 환자 동선과 치료 병원 등 국민이 정말 알아야 할 정보를 독점한 채 공개하지 않는 정부다. 물론 위기관리에 한계를 드러낸 무능한 정부 발표만을 전달하기에 급급한 언론도 유언비어 확산에 일조했다.
무능한 정부가 유언비어의 진원지이자 유발자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그 정부가 유언비어를 유포한 사람을 엄단하겠다고 나서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사회가 위기에 직면하고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 불안을 느끼고 있는데도 정부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리고 위기와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은폐될 때 유언비어는 생겨나고 대량유통 된다. ‘유언비어’의 저자 시미즈 이쿠타로는 국민은 정보에 목말라하는데 정부와 권력이 진실을 감추려고 하고, 언론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정보의 공급과 수용의 극명한 불일치가 일어날 때 등장하는 것이 유언비어라고 강조한다.
의혹만 쌓이고 사건과 사태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진실, 사실이 제공되지 않아 유언비어가 창궐했던 광주민주화운동에서부터 광우병 사태, 천안함 사건, 세월호 대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정보와 현실 사이에 갭이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져 현실을 어떻게든 해석하기 위해 갖가지 정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유언비어는 폐해가 크다. 하지만, 유언비어는 사회적 감수성과 국민의 잠재적 여론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초 역할도 한다. 시미즈 이쿠타로는 유언비어를 ‘잠재적 공중’에 의한 ‘잠재적 여론’으로 보고, 사회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권력에 비판을 가하는 사회적 기능도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유언비어 유포자 엄단에 앞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유언비어에서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과 문제의 본질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숨겨진 여론과 민심을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 유언비어 단속에 앞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무능과 무대책에서 벗어나는 게 유언비어 유발자인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유언비어는 진실이 가려진 사회의 은밀한 속삭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