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에는 이번 2분기에 반영한 해양플랜트 부문 손실이 끝이 아닐 것이란 두려움이 남아 있다.”
29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가 지난 2분기에 총 4조7509억원의 적자를 냈다는 실적 발표 이후 조선업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진행 중인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것”이라고 털어놨다.
◇조선 빅3 해양플랜트 수주잔액 50조원 =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여전히 수십조원의 수주잔액을 갖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해양·특수선 부문 수주잔액은 16조9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의 조선해양 부문 수주잔액은 20조9900억원이다. 현대중공업은 건설장비·엔진기계·전기전자 등 비(非)조선 사업부문을 제외한 조선해양 부문에서 25조4000억원의 잔액이 남아있다. 3사를 합하면 조선해양 부문의 수주잔액은 52조원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이들 기업은 29일 열린 실적 설명회에서 미래의 추가 손실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와 같은 대규모는 아니어도 적지 않은 규모의 손실이 2018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양플랜트 공사가 예상 불가의 영역이란 점도 추가 손실 발생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회계에 반영했다. 당시 이들은 “예상 가능한 리스크를 모두 포함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올해 2분기에도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추가 손실이 나면서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중공업의 2분기 영업손실은 1조5481억원. 이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적자다.
김성훈 회계사는 “헤비테일(인도 후에 계약금액 대부분을 지급하는 방식) 계약이 일반적인 해양플랜트 공사에서 인도의 지연은 그 자체로 금융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며 “공정률에 따라 계약금액이 지급되는 표준계약에서보다 손실 부담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해양플랜트 사업 계륵되나 =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끊임없이 적자를 내면서 이 사업부문이 위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해양플랜트는 수주액이 일반 상선의 수십 배에 달하지만 공기(工期)가 길고 건조가 까다롭다. 1억 달러 안팎인 초대형 유조선은 수주부터 인도까지 2년이 걸린다. 반면 7억 달러인 드릴십(선박 형태의 시추 설비)은 최소 3년의 건조 기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해양플랜트는 상선에 비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국산화율은 20~30%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기자재와 기술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해양플랜트보다 고부가가치 상선 수주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반 상선의 경우 국내 조선사들이 자체 설계를 할 수 있고 기자재도 100% 국산화돼 있다.
해양산업에 정통한 관계자는 “해양플랜트는 국산화율이 낮아 입찰에 참여하는 실무진이 실제 공사비용을 예측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 보니 변수가 많아지고 입찰 참여팀과 공사진행팀의 책임 공방도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해양플랜트 시장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영국의 에너지시장 조사기관인 더글라스 웨스트우드에 따르면 해양플랜트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6.7% 성장할 전망이다. 15년 뒤 시장규모는 5000억 달러(580조원)에 달한다.
또 비대해진 국내 조선사의 작업장은 상선으로만 채우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 조선사가 일반 상선의 수주를 크게 늘리고 있는 점도 국내 조선사가 해양플랜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7일 해앙플랜트 기술의 국산화 추진을 정부에 건의했다.
김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사는 1990년대 이후 추진한 성장 일변도의 경영전략에서 벗어나 내실을 다지며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