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짜왕’을 보면 신춘호 농심 회장이 왜 라면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신화를 써 왔는지 알 수 있다. 농심의 제면 노하우를 총 집약해 일반 라면의 2배 두께로 키운 것이 적중했고, 국산 다시마 가루를 사용해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을 더해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수프→면발’ 시대로의 대변혁을 이끈 건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지금의 농심 사옥이 있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고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하지만 신 회장은 판매부진으로 1969년 부산공장 가동 중단 사태에 직면했다. 당시 부채비율이 1000%에 이를 정도로 회사는 위기였다.
하지만 신 회장은 “신제품 개발만이 살길이며 식품회사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에 있다”면서 새로운 라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한다. 닭고기 육수 베이스의 라면에서 쇠고기 라면을 출시하면서 농심의 점유율은 20%를 넘겨 1위 탈환의 발판을 마련한다.
1980년대 들어 신 회장은 라면의 맛과 품질은 수프에 있다고 판단해 경기도 안성에 수프 전문 공장을 세우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안성공장 덕분에 1982년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 등 지금까지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라면이 1980년대 대거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