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역사를 자랑하는 휴렛팩커드(HP)가 1일(현지시간)부터 HP주식회사와 HP엔터프라이즈(HPE) 2개사로 분리됐다. 멕 휘트먼 HP 최고경영자(CEO)는 2일 뉴욕증시에서 새로 탄생하는 HPE 증시 상장 기념 오프닝벨을 울리면서 지난 1년간 추진해온 HP의 분사 작업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나 향후 과제도 만만치 않다.
휘트먼은 소프트웨어와 서버, 스토리지 등 기업고객을 전담하는 HPE의 CEO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PC와 프린터 등 소비자 제품을 제조하는 HP주식회사는 디온 와이슬러 신임 CEO 체제 하에 움직이게 된다.
HP주식회사는 기존 HP의 증시 티커명인 ‘HPQ’를 유지하고 로고도 그대로 쓴다. HPE는 로고를 새롭게 쓰고 티커명은 ‘HPE’로 정했다.
두 회사 모두 해결해야 할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PC의 쇠퇴 속에서 와이슬러 HP주식회사 CEO는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 대비 3.1% 수준에 그쳤던 연구·개발(R&D) 비용을 확충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우리는 프린터와 PC를 통해 막대한 현금을 쌓았다”며 “그러나 R&D 투자가 항상 이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배당 등을 통해 주주환원도 많이 하겠지만 우리의 기술을 개선하고 복사기와 3D 프린터 등 새 영역으로 뻗쳐나갈 수 있도록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휘트먼의 HPE는 클라우드 서비스 등 다른 부문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고객들의 이탈을 막는 것이 최대 도전과제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이미 클라우드에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IBM은 지난 2013년 20억 달러(약 2조2770억원)를 들여 클라우드업체 소프트레이어를 인수했다. 오라클은 지난주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사업을 클라우드로 재정립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HP는 지난주 자체 클라우드 프로젝트인 ‘헬리온 퍼블릭 클라우드’를 5년 만에 접는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AWS, MS 애저 등 경쟁사 서비스에 역부족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토니 사코나기 샌포드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기업시장의 가장 큰 부분은 확실히 클라우드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그러나 HPE는 이 부문에서 고객에 제공할 것이 없다. 기존 고객이 바로 타사로 옮기지는 않겠지만 다른 경쟁사는 HPE보다 클라우드에서 눈에 더 잘 띄고 긍정적인 단계를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HP가 분사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실적 부진이다. HP는 지난 7월 마감한 2015회계연도 3분기 매출이 25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다. 지난해 분사 결정을 첫 발표한 이후 회사 주가는 27% 가까이 하락했다.
이에 HP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고객에 집중하기 위해 HPE를 분사시키려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델이 지난달 중순 무려 670억 달러에 EMC와 합병한 것과 이유가 같았다. ‘기업고객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는 같았지만 HP와 델의 실행전략은 정반대가 된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HP가 분사로 당장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며 성패는 그들 각각에 놓인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