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 국민 사이에선 자국에 대한 테러 위협은 물론 해외에서 벌어진 사회 불안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북한의 핵실험과 이란의 지속적인 도발, 5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 등.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 TV가 지난달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70%가 ‘국가의 방향성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한 조사에서 미 국민의 51%가 ‘대통령이 하는 일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이야기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 중에서 가장 강조된 건 경제, 기술, 국가 안보, 정치 등 네 가지였다. 오바마는 두 번째 임기에 군사력보다는 외교적 수단으로 외교 정책을 성공시킨 것을 강조하면서 이란 핵협상 타결과 쿠바와의 국교 회복을 예로 들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데 있어서 미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이뤄진 국정연설이었음에도 북한 문제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북한을 무시하거나 외면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부 국가는 북한의 도발에 동요하고 있지만 미국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다.
분명한 것은 지난 7년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저지에 실패한 건 물론, 오히려 북한의 도발만 자극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오바마의 남은 임기는 1년.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에서 한반도 문제를 아예 제쳐놨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북한 핵문제는 한국의 존망이 달린 최대 현안임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해결 의지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북한의 존재가 자국에 전략적 가치가 있음으로 인해 미지근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유엔이 추가 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20년 넘게 반복해온 얘기다.
핵 무장론이 피어오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대국민담화 발표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정부 대응 중 하나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도입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것도 핵 앞에선 보잘것없는 대응이라는 평가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는 “핵 비보유국이 보유국에 대들다간 멸망하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핵은 핵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현재 미국 내에선 중국, 러시아,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등 동맹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는 게 좋은 것인지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결론은 한국의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국내에서 핵 무장론이 힘을 얻는 건 미국의 핵우산이 얼마나 유효한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북핵이 한반도뿐 아니라 미국까지 겨냥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그걸 감수하고 한국을 지켜줄 것인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북한의 핵실험 도발 당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방위 공약을 재확인하며 다시 한 번 핵우산을 보장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은 확고부동하다”며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제재도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이 아무리 포괄적 제재를 약속해도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효과는 약하다. 미국도 군사적 제재보다는 경제 제재로만 압박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북한의 핵 도발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중국이 단호하게 나서줘야 한다. 이번에도 구두 경고에 그친다면 중국이 기대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진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자위 차원의 핵개발이 현실화돼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면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