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미야자토 아이ㆍ요코미네 사쿠라의 낡은 모자 속 황금 매너

입력 2016-01-29 08:51 수정 2016-01-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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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토 아이(왼쪽)와 요코미네 사쿠라. 두 선수는 일본여자프로골프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다. 하지만 두 선수의 오래된 모자는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LPGA 홈페이지)
▲미야자토 아이(왼쪽)와 요코미네 사쿠라. 두 선수는 일본여자프로골프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다. 하지만 두 선수의 오래된 모자는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LPGA 홈페이지)

작은 체구의 두 여성 프로골퍼가 연습 그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회장을 찾은 갤러리들은 두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 선수는 수많은 시선을 등에 업고 퍼트 연습을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한 대회장 풍경이다. 주인공은 당시 일본 여자 프로골프 흥행의 주역이자 동갑내기 맞수 미야자토 아이와 요코미네 사쿠라(이상 31)다.

사실 두 선수의 응원전은 미디어로부터 시작됐다. 아이와 사쿠라는 프로 데뷔 전부터 각종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JLPGA 투어 차세대 주자로 불렸다. 어쩌면 두 선수는 일본 언론의 호들갑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의 호들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JLPGA 투어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흥행을 따라잡지 못했다. 후도 유리(43)라는 거물이 있었지만 골프팬들을 매료시킬 만한 스토리가 없었다. 장기간 침체 늪에서 허덕이던 JLPGA 투어로선 어떻게든 스타가 필요했다. 그런 시점에서 아이와 사쿠라의 등장은 JLPGA 투어 판도를 바꿀 구세주였다.

두 선수는 주니어 시절부터 오키나와(沖縄)와 규슈(九州) 대표로서 각종 대회에 출전했던 만큼 지역의 자존심도 걸려 있었다. 두 선수 모두 160㎝가 안 되는 작은 체형이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무궁무진한 잠재력, 그리고 악착같은 승부근성을 갖추고 있었다. 분명 스타기질을 타고난 선수들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전혀 다른 플레이스타일과 성격은 이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했다. 프로데뷔 후에도 자존심 대결은 이어졌다. 아이는 소니(SONY), 일본항공(JAL)과 후원 계약을 맺었고, 사쿠라는 엡손(EPSON), 전일본공수(ANA)와 계약했다. 용품 브랜드도 브리지스톤과 SRI스포츠(던롭)로 나뉘었다.

일본 골프팬과 언론의 기대감은 성적으로 입증됐다. 아이는 2004년 정규투어에 데뷔해 5승을 달성, 상금순위 2위에 오르며 신인왕 영예를 안았다. 이듬해인 2005년엔 6승을 차지한 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쿠라 역시 2004년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2005년 2승, 2006년엔 3승을 차지했다. 아이의 LPGA 투어 진출 후에는 JLPGA 투어를 호령하며 외국 선수 강세 속 일본의 자존심으로 군림했다. 2009년에는 최다 상금 기록을 경신하며 상금왕에 올랐다. 그의 JLPGA 투어 통산 우승은 23승이다. 지난해는 아이가 뛰는 LPGA 투어로 활동 무대를 옮겨 라이벌전 제2라운드를 시작했다. 둘의 맞수 관계는 그렇게 2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두 선수는 20년이란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이뤘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두 선수의 ‘낡은 모자’다. 아이와 사쿠라는 프로 데뷔 때부터 스폰서인 브리지스톤과 던롭 모자를 써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두 선수다. 어떤 기업이 됐든 두 선수의 영입 작전이 ‘보이지 않게 펼쳐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다른 모자로 바꿔 쓰지 않았다.

두 선수의 ‘오래된 모자’에는 업체 간의 보이지 않는 매너가 존재한다. 비정상적인 거래나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몸값 폭등을 사전에 틀어막겠다는 의도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로 안정된 투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상호 존중이 뒷받침한다.

최근 수년 사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 대회 수는 늘었고, 상금 규모는 큰 폭으로 성장했다. 당연히 선수들 몸값도 올랐다. 하지만 급성장에는 늘 후유증이 동반한다. 비정상 거래와 조건 제시로 ‘선수 갈로채기’ 또는 ‘일단 묶어두기’ 경쟁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결국 후원 업체와 선수들이 겪어야할 시련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미야자토 아이와 요코미네 사쿠라가 일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 거기에 완벽한 자기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골프팬과 미디어, 그리고 후원 업계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컸다. 아이와 사쿠라의 ‘오래된 모자’가 세월이 지날수록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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