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년 2월 15일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해 로마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간주됐던 사람이다. 그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1632년)는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다.
“태양이 세계의 중심이며 정지한 상태라는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으며 성서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단이다.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운동하며 스스로 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허구이며 적어도 신학적으로 잘못이다.” 로마교회의 종교재판소는 갈릴레이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판결했다. 이에 따라 갈릴레이는 1633년 6월 22일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참회하며 잘못을 되풀이할 경우 어떤 형벌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를 썼다.
피사대, 파도바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던 갈릴레이는 성서와 지동설의 모순에 관해 제자들 등에게 편지 형식으로 자기 생각을 써 보냈었다. 그러다가 1616년에 로마의 이단심문소로부터 직접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재판에 회부돼 앞으로 지동설을 주장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책까지 내며 또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두 번째 재판을 받은 것이다.
각서를 쓴 뒤, 갈릴레이는 오랫동안 망원경 관측을 하다가 시력을 잃고도 집에서 큰딸과 함께 저술에 힘썼다. 1642년 1월 8일 사망했을 때 로마교황청은 공식적으로 장례를 지내거나 묘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그의 사망 350년 만인 1992년에 종교재판의 과오를 인정하고 복권을 공식 선언했다.
갈릴레이는 완만한 경사면에 놋쇠 공을 굴리는 실험을 통해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근대 동력학의 출발이 된 중요한 실험이었다. 그의 성과 이름이 비슷한 것은 장남의 경우 성을 겹쳐 쓰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습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