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나라를 서방에 갖다 바친 매국노’, ‘용도 폐기된 공산당 일당 독재에 메스를 가한 개혁가.’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3.2~)만큼 러시아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인물은 아마 드물 것이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그만큼 세계 정치에 진한 여운을 남긴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러시아 북부 스타브로폴 지방의 프리블례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바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1952년 공산당에 입당해 교내 공산주의청년동맹(콤소몰) 조직원으로 활약했다. 이어 1968년 지구당 제1서기, 1971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 1978년 농업 담당 당서기, 1980년 정치국원 등 소련 공산당 요직이란 요직은 죄다 거쳤다. 그리고 유리 안드로포프가 집권하자 후계자로 지목됐고, 콘스탄틴 체르넨코 집권 기간에는 제2인자의 위치를 굳혔다. 그리고 마침내 1985년 3월 체르넨코가 죽자 당서기장에 오른다.
그런데 그가 소련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후 들고 나온 정책은 실로 의외였다. 바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였기 때문. 그의 개혁·개방은 소련에서 그치지 않고 동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쳐 민주화를 가져왔다. 특히 1990년 3월 소련 최초의 대통령에 선출된 후인 1991년 7월엔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계급투쟁을 수정하는 소련공산당 새 강령을 마련했다.
그는 1991년 8월 보수강경파에 의한 쿠데타를 유발해 한때 실각하기도 했지만, 쿠데타 실패로 3일 만에 복권됐다. 권력을 다시 잡은 그는 공산당을 해체했다. 소련의 40년 일당 독재가 종막을 고한 것.
그러나 보리스 옐친 등의 주도로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연합이 탄생하자 1991년 12월 25일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199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