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 받은 건 처음인 것 같다.(웃음)”
인터뷰 무대에 올라온 이세돌 9단의 얼굴은 마음의 짐을 벗은 듯 너무나 환했다.
이세돌은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진행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1200개의 CPU(중앙처리장치)로 이뤄진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인류 대표’가 첫 승을 거둔 것. 이세돌은 앞선 세 번의 대국을 모두 패해 이날 승리가 더욱 극적이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500번 대국해 499승을 거둔 알파고는 이날 인간을 상대로 첫 패배를 기록했다.
이세돌은 대국 중반 두 귀를 점령하고 좌변과 우변에 집을 마련하는 실리 작전으로 알파고를 밀어붙였다. 승부처는 중앙에서 나왔다. 중앙 흑 한 칸 사이를 끼우는 이세돌의 78수가 나오자, 알파고는 우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남발하며 형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이후 이세돌이 알파고의 주요 영역이었던 하변 흑 대가에서 집을 파괴하자, 알파고는 모니터에 ‘AlphaGo Resign’을 띄우며 항복을 선언했다.
이세돌은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1승”이라고 감격해 했다. 그는 “알파고가 흑을 잡았을 때 더 힘들어 한다. 또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수를 뒀을 때 버그가 발생하는 등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실전으로 분석한 약점을 언급했다.
지난 3번의 대국에서 1초당 10만 개의 수를 계산하는 연산 능력을 가진 알파고는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이세돌이 순수한 인간의 능력으로 알파고에게 승리한 것은 역사적 성과로 거론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는 초반에 스스로 우세한 형세라는 추정 값을 냈지만, 이세돌의 묘수와 복잡한 형세에 기인해 실수가 나왔다”며 “오늘은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굉장히 버거운 상대였다”고 말했다. 경기 중 트위터를 계속 하던 허사비스는 알파고가 87수 때 실수를 저지르자 “실수는 79수였다. 그러나 알파고는 87수가 돼서야 그 실수를 알아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세돌이 1승을 거두면서 마지막 5국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IT전문가들은 “이세돌 9단이 네 번의 도전 끝에 승리를 거뒀지만 또 다시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사람의 계산 능력을 넘어선 인공지능의 대국을 봤을 때 확률적으로 알파고의 승리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은 “이번에 백으로 이겼기 때문에 5국에서는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어치 있다”며 강한 승부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