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상장되더라도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 요건에서 탈피할 수 있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는 이건희 회장 일가가 기존의 순환출자구도의 유지를 통해 변함없는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삼성생명 상장이 삼성그룹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삼성그룹 지배구도의 골격은 이건희 회장 일가를 정점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순환되는 출자구도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3.3%(이하 보통주 기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7.3%,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46.9%,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25.6%를 소유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보유 자회사 지분의 가치가 회사 총 자산의 50%를 초과할 경우 지주회사로 분류된다.
현재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로 지난해말 장부가액 기준 총 자산(3조6082억원)의 46.64%를 삼성생명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에버랜드는 현재 장부가로 계산한 자회사 가치를 시가로 반영해야 해 현 장외시세(71만2000원) 기준 지분가치(2조7545억원)가 총 자산의 76.34%로 지주회사 전환 요건에 해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에버랜드의 자회사인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유지분 7.26%를 팔아야 한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나 손자회사는 제조업체 지분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축인 출자 구조가 깨지면서 지배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이은정 CGCG 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삼성SDS가 매입하는 방식을 통해 지주회사 요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연구원은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의 일부를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전자나 물산 지분을 확보,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때 에버랜드의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된다는 문제가 있어 이건희 회장이나 계열사들이 생명 지분의 일부 혹은 전량을 매입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19.34% 가운데 절반인 9.67%를 매각할 경우 에버랜드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31.95%로 낮아진다. 매각 가격은 주당 75만원을 기준으로 약 1조4000억원 규모다.
이 연구원은 "에버랜드가 매각하는 삼성생명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계열회사로 삼성생명이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상호출자금지) 삼성전기, 정밀화학, 삼성SDS, 제일기획 등이 있다"며 "이중 삼성SDS가 매입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SDS가 비상장 회사로 이재용 상무 등(18.28%) 임원, 재단 등을 합할 경우 보유지분이 29.31%에 달하며, 지난해 말 현재 약 5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 일부 매각으로 지주회사 요건을 탈피하는 한편 매각 자금으로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에 대한 지분을 매입, 취약한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일가→삼성에버랜드 및 삼성SDS→ 삼성생명→삼성전자 및 삼성물산'의 소유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은정 연구원은 "이건희 회장 등이 그룹에 대한 안정적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회장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이하 회장일가 지분율 35.6%)나 삼성SDS(29.6%)가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며 "지분매입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삼성SDS 등을 상장시키거나 에버랜드 보유의 부동산 개발 혹은 매각을 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CGCG는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할 가능성이 있지만 삼성생명이 팔아야 하는 삼성전자(7.3%)와 삼성물산(4.7%) 지분을 누가 어떻게 매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고 지적했다. 금융지주사 전환시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 7.3%(1068만8892주)는 18일 종가기준 6조3000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밖에 CGCG는 삼성그룹 소유구조에 영향을 주는 사항으로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의 매각 ▲삼성카드의 상장 ▲삼성생명의 상장 시점 ▲금산분리원칙 등을 꼽았다. 특히 삼성생명의 상장이 삼성차 부채 분담 약속 및 관련 소송으로 인해 삼성그룹으로서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