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어디 아름다운 사람 좀 없나

입력 2016-04-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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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요즘 한국인들은 무슨 희망으로 살고 있을까. 무엇에 마음을 기대거나 붙이고 있을까. 어디를 둘러봐도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이 없다. 함께 사는 공동체나 사람 사는 세상, 살맛 나는 사회는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들리느니 온통 용렬하고 지저분하고 부정직하고 참혹한 이야기뿐이다.

김연아처럼 한결같이 국민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스타도 없고, 남과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의인이 실종된 시대에, 가진 자들의 비루한 갑질과 타기할 추문, 자녀를 살해하는 인간 이하의 부모 이야기만 횡행하고 있다.

이른바 선량들의 배출무대인 4·13총선은 선거 전부터 막공천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하더니 선거운동 기간엔 추하고 볼썽사나운 경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런 일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고교 동기동창 친구끼리 고발 으름장을 놓아가며 아름답지 못한 싸움을 하는 곳도 있다. “이런 동기를 믿고 어떻게 한 하늘 아래 살 수 있겠나”, “먼저 사람이 돼라”라는 말까지 나왔다.

경쟁은 어느 사회에서나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다만 많은 이들이 수긍하고 납득할 만한 품위와 수준을 지키고 공정한 규칙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1967년 6월 8일 치러진 7대 총선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성진(金晟鎭) 중앙상임위의장과 신민당 유진오(兪鎭午) 당수가 서울 종로에서 대결했다. 둘은 종로구 화동의 이웃에 살던 소꿉동무이며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동기였다. 금권선거와 흑색선전, 비방이 난무하던 시절에 두 사람은 유군, 김군으로 호칭하며 서로 치켜세워 언론에 ‘친애하는 적끼리의 상찬사(相讚辭)’라고 소개됐다. 선거에서는 유진오가 승리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금 가지 않았다.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을까. 자유당 때 이기붕 부통령과 야당지도자 유석 조병옥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친한 친구였다. 호주가로 유명했던 유석은 단골 중국집의 외상값 처리를 이기붕에게 부탁했고, 그러면 이기붕은 흔쾌하게 갚아주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당의 원로 정치인이 야당 의원의 되바라진 언행을 나무라면 군말없이 어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당이 다르면 다만 적일 뿐 선배도 눈에 안 보이고 후배는 안중에도 없다.

1945년 2월 16일 사망한 시인 윤동주가 올해 사람들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시집과 전기물이 많이 팔리는 ‘윤동주 붐’이 일어난 것은 영화 ‘동주’가 그의 기일에 맞춰 개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나온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부활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요인은 사람들이 윤동주에게서 ‘순결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윤동주 붐’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다.

초등학생들은 도덕시간에 ‘내면적으로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보라는 숙제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적어내는 이름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어른들이라고 해서 적어낼 이름이 그리 많을까. 명망이 높은 사람들의 이면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더 찾아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걸핏하면 운전기사를 폭행하고 욕설을 퍼붓는 재벌가 3세, 경비원을 때려 ‘미스터 피자’가 아니라 ‘미스터 패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 이런 이들을 한군데 불러 모아 앉히고, 인간의 도리와 겸손, 배려에 대해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제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철없고 못된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물질적 피해를 당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감동과 미담이 사라진 천박한 사회, 한국사회는 고작 이런 수준인가. 어디 아름다운 사람들 좀 없나.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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