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공개는 사실상 이 총재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총재는 그간 이투데이와 한은 출입기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사실상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한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하겠다고 언급해왔다. 정부정책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한은이 반기를 드는 것처럼 비친데 따른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지난달 24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참석해 구조조정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달 26일 퇴근길에 만나서는 한은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느냐는 질문에 “나중에”라고 말해 사실상 국책은행 지원을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윤면식 부총재보는 전달 2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발표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기업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금 확충이 필요하다면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며 “한은 발권력 동원은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공감대 형성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친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두 야당이 쌍수(?)를 들고 환영 논평을 내놓은바 있다.
당시도 이 총재는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박하는게 아니라 이야기는 하기로 했으니 이야기해야 한다”며 해명성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이같은 공개는 논란의 여지가 커 보인다. 국책은행 출자를 비롯한 각종 지원방안을 앞두고 한은 발권력동원 논란등 다양한 이슈가 불거지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나온 것 이어서다. 또, 최소한의 한은 권리도 권력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을 스스로 연출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그렇잖아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재임시절 “척하면 척”등 정부 입김에 한은 독립성을 힘없이 내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총재는 재임 2년간 금리인하를 연거푸 해온 것은 물론, 금융중개지원대출 증액, 주택금융공사 출자, 주금공 주택저당증권(MBS)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대상증권 지정 등 정부정책에 적극 동조해왔다.
앞서 지난달말 박승 전 한은 총재와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따른 한은 발권력 동원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바 있다. 특히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이투데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구조조정에 발권력동원은 국가운용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한은 노동조합(노조)도 지난달 29일 “한국적 양적완화는 관치금융”이라면서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은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