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만 해도 이 정부가 출범할 당시 국민에게 무엇을 줄 것이라 말할 때가 아니라 했다. 오히려 양보와 인내를 요청해야 할 때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양보와 인내가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기회만 있으면 이야기해 왔다. 바로 구조조정의 문제였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의 정책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장관들은 임기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고, 그만큼 고통이 따르는 중·장기적 과제들을 회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드라이브가 약한 사람이나 정치적 욕심이 큰 정치인을 경제부처의 장관으로 앉히지 말라 했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에 메스를 대어야 하는 험한 일로부터는 도망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지난 일을 말해 무엇하겠나마는 한번 돌아나 보자. 청와대의 정책 기능은 역대 정부 중 가장 낮았다. 산업구조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 결과 노동·교육·공공·금융의 4대 개혁을 외쳤지만 막상 이러한 개혁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쉽게 동력이 붙을 수가 없었다.
대신 들리느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창조경제’ 이야기에, 쪼가리 권력을 두고 싸움질이나 하는 참모들 이야기였다.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할 민정부서나 심부름이나 해야 할 ‘측근들’이 오히려 더 힘을 쓴다는 소문도 들렸다.
주요 경제부처도 마찬가지이다. 심약한 사람과 정치인 등 앉혀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수장으로 앉혔다. 그 결과 돈 풀고 이자율 낮추고 부동산 경기 살려 ‘반짝’하게 하는 데 힘이 주어졌다. 심장이 좋지 않아 두통이 오는 사람에게 내리 두통약만 처방한 셈이다. 그 바람에 심장은 더 나빠졌다.
지금도 그렇다. 구조조정 어쩌고 하지만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구조조정을 하자면 신산업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 또 자본과 노동을 그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자본시장 정책과 재정 정책, 사회안전망과 재교육·재훈련을 강화하는 정책,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잘못된 지배구조를 고치기 위한 정책들이 잘 짜여 있어야 한다.
어떤가? 잘하고 있는가? 일례로 지난달 28일 부랴부랴 신산업정책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 속을 봐라. 대기업 중심에다 세제 혜택을 주고 공공자금을 조성하는 등의 관 주도 방안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개편 등 상시적이고 자율적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부분이나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 강화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양적완화’ 등 재정지원 문제도 그렇다. 곧바로 야당이나 한국은행과 마찰을 빚었다. 야당은 그렇다 치고, 한국은행의 입장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뒤늦게 한국은행이 협조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이런 수준으로 어떻게 자본과 노동을 설득해 나가겠는가?
쉬운 일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오죽하면 “권력이 시장으로 갔다” 했겠나. 산업구조를 바꾸기가, 또 그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가 너무도 힘들었기에 한 말이었다. 한·미 FTA도 그렇다. ‘대박’이 난다는 생각에 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하기 어려우니 시장의 압력을 끌어들여서라도 자본과 노동에 압박을 가하자는 뜻이 들어 있었다.
어려운 만큼 큰 업적이 될 수 있다. 또 늦긴 했지만 지금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문제가 심각한 만큼 국민과 정치권의 동의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당장에 야당부터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나? 왜 이 분명한 문제를 보지 못했는지, 봤다면 왜 여기까지 오게 그냥 두었는지를 다각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 그런 만큼 제대로 풀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