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의 창조적 혁신은 생명체의 돌연변이와 같이 쓸모가 없다. 극소수 돌연변이로 생명체가 진화한 것과 같이 일부 가치 있는 혁신이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 즉, 창조성의 발현 조건은 연결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고, 연결을 촉진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양대 축으로 구성된다.
연결을 저해하는 요소는 각종 규제와 조직 간 칸막이들이다. 각종 규제는 진입 장벽이 되어 새로운 창조적 융합산업의 탄생을 가로막는다. 새로운 산업이 탄생될 때는 수많은 기술과 사회적 현상들이 융합되어야 한다. 모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사전에 허가받도록 하는 한국의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창조적 산업 출현을 가로막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한국이 드론, 웨어러블, IoT(사물인터넷) 등 수많은 신산업에서 중국에 뒤진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진입 규제의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하지 말라는 것을 빼고는 모두 할 수 있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국가다. 한국은 하라고 명시된 것을 빼고는 해서는 안 되는 포지티브 규제 국가다.
이러한 진입 규제는 개발도상국이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에는 유효하다. 이미 선진국에서 완성된 산업을 따라잡는 과정에서는 문제도 알고 응용분야도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전에 제품과 서비스의 사양을 정할 수 있고, 적절한 사전 규제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서는 전환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추격자 전략의 무기였던 사전 규제는 선도자 전략에서는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규제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을 때는 규제하지 말고, 일정 규모 이상 커지면 적절한 규제를 하되 가능한 한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징벌로 가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사전 규제는 하지 않되,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발각될 확률 이상의 징벌을 가한다. 마치 KTX 표 검사와 같다. 확률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지키는 편이 유리하도록 만들면서 사회적 비용인 창조성 억제와 검사비용 등은 최소화시키는 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창조성을 위한 개방협력은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소프트웨어 생산성 차이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개별 개발자의 역량은 한국이 더 우수하고, 한국의 개발자들이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우리는 개발의 95%를 남들과 협력하지 않고 내부에서 단독으로 추진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95%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오픈소스로 구성되고 5%만이 내부에서 개발되고 있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비교해보면 적어도 10배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개인 정보와 국방에 관한 데이터를 제외한 모든 국가 정보를 개방한다는 정부 3.0을 현 정부가 야심차게 선언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전 세계적 개방 정부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다. 비개방 데이터만 모아 찾아내 보안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개방하는 것이 정부 3.0의 지향점이었다.
정부의 망 분리 원칙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안 되니 부처 간 협력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정부 2.0 프로젝트의 핵심이 공유작업센터(shared service center)라는 것에 주목하자. 정부의 클라우드센터를 만든다고 한, 그 이전 데이터 개방의 정신이 선별 개방의 포지티브적 사고가 아니라 원칙 개방의 네거티브적 사고로 가야 할 것이다.
제도와 데이터의 규제 패러다임은 이제 원칙적 금지에서 원칙적 허용으로 대전환을 해야 하고, 그 중간 과정으로서 규제 프리존은 중요한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