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이어 이어셋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리플버즈는 지난해 9월 미국 벤처캐피털(VC)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고민 끝에 이를 포기했다. 투자자 측은 리플버즈에게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선결 조건을 내걸었고, 이 과정에서 거액의 양도세가 붙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김승현 리플버즈 공동 창업자는 “투자를 받기 위해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야 하는 플립을 추진하는 업체들이 급격히 많아졌다”면서 “우리도 한때 플립을 하기 위해 미국 변호사, 세무사에게 자문을 받았지만, 플립 과정에서 수억원의 세금을 내야 해 감당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타트업 비디오팩토리도 미국 진출을 위해 투자자들로부터 본사 이전 요청을 받은 상황이다. 현재 황민영 비디오팩토리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미국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 황 대표는 “아직 플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플립은 미국법인을 본사로 만들고, 한국법인을 지사로 바꾸는 개념이다. 한국법인 주식을 미국법인에 출자하고, 주주들은 대가로 미국법인 주식으로 갖게 되는 방식이다. 현지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관리하길 원하는 미국 벤처캐피털들은 본사 이전을 투자 조건으로 제시하는 추세다. 하지만 불과 1~2년 사이에 알려진 방식이어서, 국내 스타트업들에게는 낯선 게 사실이다.
때문에 리플버즈와 같이 플립을 추진하다가 거액의 세금 문제로 투자 유치를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미 외부에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라면 주식가치가 기존에 비해 높아지게 되는데, 한국법인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플립 과정에서 스타트업들은 주식가치 차익만큼의 양도세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유동성에 한계가 있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수억원의 양도세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 변호사는 “자문 없이 홀로 추진하려고 하면 세금 문제 때문에 성공적으로 플립을 완료하기 힘들다”면서 “복잡하지만 다양하게 양도세 명목을 줄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우선적으로 해야 하고, 이전 주주들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탄력적인 세제 운용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김선일 세무사는 “최근 정부가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는 만큼, 조세특례제한법 하의 감면 혜택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이런 문제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