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냈을 때 가해자가 피해에 대한 별다른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면 뺑소니범으로 간주된다. 피해 사실을 확인 후 병원으로 옮기는 등 구호조치를 취하고, 연락처와 이름 등 인적사항을 확실하게 전해야 처벌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처벌의 경계가 항상 명확하지는 않다. 자신의 인적사항을 제대로 남기지 않고 현장을 떠난 가해자에게 뺑소니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김모씨는 2011년 10월 편도 2차로 도로 오르막길에서 접촉 사고를 냈다. 신호대기 중에 차량이 뒤로 밀리면서 뒤에 있던 택시와 부딪친 것이다. 김씨는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택시 운전자와 대화를 나눴고, 택시 기사가 수첩과 필기구를 가지러 간 사이 자신의 차량을 운전해 현장을 벗어났다.
검찰은 교통사고를 내고도 인적사항을 남기지 않고 현장을 벗어난 김씨에게 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차에서 내려 피해자와 대화를 나눈 김씨를 뺑소니범으로 볼 것인지는 1, 2심 판결이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무죄판결했지만, 항소심은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피해자인 택수 운전자가 통증을 호소하거나 상처가 없었더라도 구호조치가 필요 없다고 단정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 김씨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사고 현장을 이탈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을 돌려보냈다. 사건 피해자인 택시 운전자가 약 2주간 치료가 필요한 염좌 진단을 받기는 했지만, 사고 당일로부터 9일간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고, 김씨의 차량번호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거의 유사한 사안에서 반대의 결론이 나온 경우도 있다. 2012년 부산에 사는 백모씨는 시내 도로에서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은 채 운전하다가 신호 대기 중이던 임모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백씨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고, 뺑소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임씨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으나 백씨가 현장을 떠난 이후 경찰에서 두통을 호소했고, 허리뼈 등의 염좌로 2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1심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피해자에게 외상이 없고 통증을 호소한 바가 없으며, 차량 파손 정도가 경미하므로 구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백씨에게 유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호조치가 필요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거나, 응급조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이상 외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을 이탈한 것은 뺑소니로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대법원은 이밖에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더라도 가해자가 자신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처리를 맡긴 사례에서 ‘도주의 범의가 없었다’며 무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뺑소니로 처벌해야 한다고 결론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