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7월 5일 이한열- 시위 중 머리에 취루탄 맞고 절명… 6.10항쟁 도화선

입력 2016-07-0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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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이한열(1966.8.29~1987.7.5)은 자기성찰의 끝판왕이다.” 그를 소재로 한 소설 ‘L의 운동화’를 쓴 김숨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한열은 매우 자기성찰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성찰적 태도 때문에 민주화 운동에 나섰고 이로 인해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그는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광주로 유학 가 동산초등학교, 동성중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민주화 운동을 결심한 건 동성중 재학 때인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보고 나서였다. 이후 광주진흥고를 거쳐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가자마자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던 중 2학년 때인 1987년 6월 9일 그는 연세대 캠퍼스에서 개최된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 시위를 벌이다 전투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사한 최루탄 SY44에 뒷머리를 맞아 1개월간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가 7월 5일 숨졌다. 시위 당시 온몸에 피가 낭자한 그를 같은 대학 동창생 이종창 씨가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로이터 정태원 기자에 의해 촬영됐다.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와 중앙일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5공화국의 시위 진압 방식의 잔학성이 초점이 됐다.

앞서 5공화국은 서울대 언어학과 박종철 씨를 고문하다 숨지게 한 다음 “대낮에 길거리에서 한 청년이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발표해 전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한열과 박종철의 죽음에 분개한 학생, 시민들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6·10항쟁을 벌였고, 5공화국은 6·29선언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장례식은 1987년 7월 9일 ‘민주국민장’으로 거행됐다. 당시 서울 100만, 광주 50만 등 전국적으로 총 160만 명이 그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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