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골프] ‘싱글맘’ 안시현의 눈물… 말 그대로 ‘어머니는 강했다’

입력 2016-08-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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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위 ‘아줌마 파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1일 영국에서 끝난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임신한 선수가 출전해 화제가 됐다. 잉글랜드의 여자프로골퍼 리즈 영이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출전했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 리즈 카론(미국)이 둘째 딸을 임신한 채 경기를 가졌다. 카론도 당시 임신 7개월이었다. ‘맘(mom)’을 위해 LPGA는 대회장에서 유치원까지 운영한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엄마 프로는 카트리나 매튜(스코틀랜드)이다. 매튜는 2009년 둘째 아이를 낳은 지 11주 만에 출전한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한국에는 안시현(32·골든블루)이 있다. 싱글맘이다. 12년 만에 우승을 확정하고 나서 딸 그레이스(5)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기쁨이었을까. 아마도 절반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아픔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 유럽·오스트랄아시아 코스(파72)에서 끝난 내셔널 타이틀인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총상금 10억 원). 원조 ‘신데렐라’ 안시현이 정상에 올랐다. 디펜딩 챔피언 박성현(23·넵스)을 1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주부 골퍼’로는 처음으로 맛보는 기분 좋은 우승이었다. 이날 세 살바기 아들을 둔 ‘주부 골퍼’ 홍진주(33·대방건설)도 4오버파 292타를 쳐 공동 6위에 올랐다.

‘아줌마 파워’를 제대로 보여준 날이었다. 이 대회에서 둘은 1·2라운드 때 동반 플레이를 하면서 골프보다 아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육아를 주제로 실컷 수다를 떨어서 그럴까. 둘다 이틀간의 성적이 좋았다.

여자골퍼들이 재미로 하는 골프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싱글맘은 이것이 직업이다. 볼을 잘 쳐야 생활이 된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속 모르는 사람은 볼도 치고, 돈도 벌고 그만 한 직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한다. 샐러리우먼은 직장만 잘 다니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 하지만 프로들은 다르다. 가장 무서운 것이 컷오프다. 본선에 오르지 못하면 경비만 날리는 고약한 운동이 골프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면서 경기를 해야 하는 여자프로골퍼는 고난, 그 자체다.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특히 한국의 경우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대회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주부 골퍼가 좋은 성적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결혼과 함께 대부분 그린을 떠난다. 애를 낳고 기르면서 2~3년 클럽을 놓으면 기량을 회복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안시현은 “투어에 다시 복귀할 당시의 자신감과 컨디션으로는 굉장히 잘 치고 우승도 한두 개는 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출산한 이후여서 많은 준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고 ‘맘’의 고충을 털어놨다.

홍진주도 “개인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골프 말고도 가정과 육아로 나뉜다. 이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제 기량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미난 사실은 둘의 ‘골프 궤적’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순간에 스타덤에 올라 미국행, 그러나 오랜 시간 슬럼프로 화려함 뒤에 고난과 역경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과 출산을 한 뒤 다시 국내 그린에 복귀했다.

홍진주가 1983년생 원조 ‘얼짱’이라면 안시현은 1984년생 원조 ‘신데렐라’다. ‘8등신 미인’ 홍진주는 키가 174cm에 품격 있는 몸매를 지녔다. 안시현도 169cm의 뛰어난 몸매를 지녔다. 둘 다 초청선수로 출전해 우승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둘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험난한 길을 걷다가 국내에 복귀했다.

특히 안시현은 마음 아픈 과거가 있다. 2011년 모델 출신 배우 마르코(39)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아 ‘싱글맘’이 됐다. 2012년 딸 그레이스를 낳았다.

이들에게 어려움 점은 무엇일까. 둘 다 볼을 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 골프이기 때문에 코스가 직장이다. 보통 주부 직장인들처럼 어린 자녀를 떼어놓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일이 사실 쉽지가 않다. 게다가 이들은 보통 직장인과 달리 외국이나 지방 출장이 잦다. 안시현은 올해 10차례 대회 가운데 두 번은 제주, 중국과 경남 김해와 강원 춘천을 한 번씩 다녀왔다. 홍진주 역시 중국·베트남에서 경기를 가졌고, 제주에서 3차례, 그리고 김해와 춘천에도 갔다 왔다. 특이 이들에게는 주말이 없다. 화요일부터는 공식 연습, 프로암, 그리고 본대회가 이어진다.

안시현은 우승한 뒤 “이번 나의 우승으로 후배들이 용기를 얻고, 결혼과 출산 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여자프로 중에는 원조격 ‘맘’이 몇 명 더 있다. 시니어 최강자로 군림했던 박성자(51), 부부 프로골퍼인 심의영(56), 아들이 군에 입대한 김형임(52), 딸을 프로로 만든 노유림(57) 등이다. 이화여대 출신의 박성자는 1998년 임신 8개월 때 우승한 일화가 유명하다. 김형임도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냈다.

박성자는 “의사가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배가 불룩하니 몸통 스윙이 잘 안 돼서 팔로만 쳤더니 더 잘 맞아 우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2년생 딸을 둔 박성자는 정규투어 2승, 시니어 투어에서 2007년부터 6년간 무려 13승을 거뒀다. 그는 아이를 갖고 주부와 프로골퍼를 겸업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일정 기간 쉬면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져 우승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박성자는 “결혼을 하게 되면 시집과 친정 일이 겹쳐서 시간과 정신이 분산된다. 그럼에도 정규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홍진주와 안시현은 정말 대단한 주부 선수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주부와 프로골퍼라는 직업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는 현역 ‘맘’들은 정말 ‘강한 어머니’임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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