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의 해외 자회사 성장이 멈춰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해외 사무소는 은행장 등 주요 인사 방문 시 현지 일정만 주로 챙기는 일종의 ‘접대 사무소’에 불과하다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시중 은행별 자회사 현황’에 따르면 2014년과 2015년 당기순이익 비교가 가능한 해외 자회사 27곳 중 16곳의 실적이 정체됐거나 감소했다.
해당 자료에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은행이 1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외 자회사들의 명단이 포함됐다.
은행별로 국민은행은 홍콩법인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51억 원으로 전년 86억 원 대비 40% 감소했다. 국민은행중국유한공사의 경우 2014년 80억 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엔 85억 원의 적자를 냈다. 런던법인은 2013년부터 성장률이 제로(0)다.
국민은행 측은 중국유한공사는 현지 정부의 기준금리 인하, 위안화 평가절하, 상하이 분행 설립으로 인한 초기자본 비용 증가로 인해 순익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기업금융과 투자은행(IB) 영업을 확대해 성장 기반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런던법인의 경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점 전환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한은행은 유럽, 미국, 캐나다, 중국 등에 나가 있는 자회사의 실적이 모두 좋지 않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지 기준금리 하락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해외 금융당국 기준에 맞춰 작성한 것을 다시 국내 IFRS 기준으로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사업보고서에 드러난 숫자로 해외법인 실적을 평가하는 것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나은행의 해외 자회사 중 가장 큰 수익을 내고 있는 중국 길림은행은 KEB하나은행이 16.98%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011년 2774억 원이었던 수익이 3년간 꾸준한 성장세로 4000억 원대 중반까지 끌어올렸지만, 지난해 성장이 멈췄다. 올 1분기 실적은 1267억 원이었다. 주된 원인은 최근 급격한 중국의 성장 둔화가 꼽힌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길림은행 실적은 특이 요인보다 중국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중국을 제외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대체로 좋은 성과를 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의 해외 진출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지만, 성공 확률은 매우 낮은 게 현실”이라며 “진출국 입장에서 국내 은행이 외국 자본이기 때문에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 관습이나 문화 등 사전 정보를 면밀히 파악해 현지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이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있는 해외 자회사 중 절반이 넘는 곳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50억 원 미만으로 집계됐다. 신한은행, 우리은행의 일부 해외 자회사는 지난해 10억 원 미만의 순익을 올렸다.
금융권에는 은행들의 해외 진출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지만, 차별화 없이는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은 한국 기업이 해외 진출을 하는 과정에서 결제대금 등 대외거래 창구, 주재원들에 대한 금융서비스 측면이 컸다”면서 “성장성을 확보하려면 현지 공공사업 등 규모가 큰 금융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데 국내 은행의 네트워크가 상당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지 은행의 인수나 지분 투자, 현지 자본시장 진입 등 직접 투자가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소매금융보다 기업금융 중심의 영업이 성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흥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신흥 시장은 초기에 많은 자금이 소요되고, 변동성이 큰 만큼 철저한 준비와 소신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