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금융당국이 ‘초대형 IB(투자은행) 육성방안’을 내놓고 증권사들의 몸집 불리기를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업계의 반응이 미지근하다.
정부는 증권사 자기자본에 대해 각각 3조·4조·8조 원의 단계별 기준을 두고 신규업무를 확대해주는 ‘당근’을 제시했다. 특히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증권사는 발행어음을 통해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8조원 이상의 증권사는 종합금융투자계좌(IMA)와 부동산 담보신탁 업무가 허용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당근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고심해서 단계별 혜택을 마련했지만, 증권사들은 확실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손대기 어렵다는 견해다. 자기자본 규모가 곧 투자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데다가, 자기자본을 키운 후 마땅한 투자처를 확보하지 못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검토할수록 과연 실익을 얼마나 가져다줄지 의문이 생긴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자기자본 규모 확충을 위해 증권사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관측이다.
당장 시장에서는 자기자본 7000억 원 규모의 하이투자증권이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지만 초대형 IB 육성방안이 발표된 후에도 인수 후보로 떠오른 증권사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여승주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하이투자증권처럼 비슷한 규모의 증권사를 인수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고, 메리츠종금증권도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초대형 IB를 위한 자기자본 확충을 시도한다면 리스크를 껴안은 M&A보다 유상증자가 효과적이란 입장이다.
자기자본 1조 원 미만의 중소형 증권사들은 M&A를 하더라도 초대형 IB의 최소조건인 ‘자기자본 3조 원’을 갖추기 어렵다. 이처럼 증권사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대형 매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초대형 IB를 위한 M&A 시도는 이래저래 멀어지는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우리 증권사들이 세계 수준의 IB로 도약하고자 일정 수준의 몸집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에 앞서 글로벌 IB와 경쟁 가능한 충분한 기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나 노무라 같은 글로벌 IB는 오랜 시간 자본 축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인데 정부는 이를 인위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이보다는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현실적인 규제 완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