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사망진단서를 보았는가?

입력 2016-10-04 10:26 수정 2016-10-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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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주변에 적지 않은 죽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망진단서를 받았다. 하지만 항목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사인이 명백한 죽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백남기 씨의 죽음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논란 때문이다.

첫눈에 바로 의문이 생겼다. 당장에 ‘사망의 종류’부터 문제였다. ‘병사(病死)’와 ‘외인사(外因死)’ 그리고 ‘기타 및 불상’으로 구분하게 돼 있는데 의사가 과연 이것을 완벽히 구별해낼 수 있을까? 이를테면 병사로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 요인에 의한 외인사일 수도 있다. 옥시크린 문제가 바로 그런 것 아니었나?

사고를 당한 경우도 그렇다. 백남기 씨와 같은 경우는 비교적 명확하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시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가 않다. 사고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정보를 취득할 수도 있다. 또 그 내용을 잘 안다 하더라도 의학적 영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병사와 외인사를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의사가 법의학자가 아니다. 또 법의학자라도 그렇다. 증거를 수집할 권한도, 분석할 시간도 없다. 그런 의사에게 이를 판단해 기재하라고 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행정편의상, 또 통계 목적으로 의사에게 이를 기재하게 하는데, 이는 사실상 의사의 판단 역량과 직무 범위를 넘는 일이다.

의사에게는 의학적 소견만을 쓰게 하는 게 옳다. 그런 점에서 ‘사망의 원인’을 쓰게 돼 있는 부분은 옳다. (가), (나), (다), (라)로 분류되어 있는데, (가)에는 직접 사인을 기재하게 돼 있고, (나)에는 (가)의 원인을, (다)에는 (나)의 원인을, 그리고 (라)에는 (다)의 원인을 쓰게 돼 있다.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을 좁게, 또 넓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 (다), (라) 항목을 기재함에 있어서 (가)와 ‘직접 의학적 인과 관계가 명확한 것만’ 적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보이는데, 백 번 타당한 일이다.

이번의 사망진단서 문제는 이 두 항목, 즉 ‘사망의 종류’와 ‘사망의 원인’ 모두에서 발생했다. 우선 ‘사망의 원인’의 (가), 즉 ‘직접 사인’ 항목에 ‘심폐정지’로 적은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심폐정지’는 ‘죽음의 현상’이지 죽음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토톨로지(tautology)’, 즉 ‘동의 반복’이다. 죽음을 ‘심장과 폐가 멈춘 상태’로 보는 경우, ‘심폐정지’라 쓰는 것은 ‘사망의 원인’을 ‘죽음’이라고 쓰는 것이 된다. 그래서 통계청도 대한의협도 되도록 이렇게 쓰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대한의협이 밝혔듯이 이를 완전히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 없다. 첫째, 죽음을 ‘심폐정지’ 이상의 것으로 보는 경우 ‘심폐정지’를 그 죽음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 많은 의사가 관행적으로 그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셋째, 더 큰 의학적 원인은 (나) 이하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나)에는 ‘급성신부전’, 그리고 (다)에는 뇌출혈을 의미하는 ‘급성경막하출혈’로 적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사망의 종류’이다.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진 명백한 외인사이다. 오랜 병상생활에 병이 더 중해지거나 새로 생겼다 하더라도, 그 출발이 어디였는지를 생각해 주었으면 좋았다. 하지만 이 또한 병원이나 의사만 나무랄 수는 없다. 애초에 사망진단서의 이 항목 자체가 의사의 판단 역량과 직무범위를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병원도 의사도 아니다. 부검까지 운운하며 책임을 피해 보겠다는 경찰이 문제이고, 행정적 편의주의가 다 사라지지 않은 사망진단서가 문제다.

이래저래 정부가 문제다. 정부로 인해 우리 사회는 더 심한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그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도약해 나가야 할 병원까지 그 제물이 되고 있다.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를 다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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