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대책이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가계부채의 주범으로 지목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규제하기 위해 투기 세력이 아닌 서민대출부터 옥죄는 뒤죽박죽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담대 잔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잘못된 ‘빗장 걸기’로 서민들의 대출이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다.
최근 주택금융공사가 대표적인 서민 대출 상품인 보금자리론 공급을 제한한 데 이어 은행권도 사실상 올해 적격대출 판매를 중단했다. 보금자리론과 마찬가지로 한도 소진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신한은행, 국민은행, 농협은행은 지난달까지 올해 취급분을 마무리했고, 기업은행은 이달 1일 적격대출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격대출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정책상품으로 2012년 3월 출시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중도금 집단대출을 중단했다기보다 문턱을 높이다 보니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집단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기 시작한 것은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크다. ‘8ㆍ25 부동산대책’의 후속조치로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이달부터 중도금 대출 보증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췄다. 은행들은 리스크를 10% 추가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은행뿐만 아니다. 서민들은 저축은행, 상호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에서도 주택구입 자금을 빌리기 힘들어진다.
시중은행에 막힌 주담대 수요는 새마을금고ㆍ수협이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제2금융권 대출 금리는 4~5%대로 시중은행보다 1~2%포인트 이상 높다. 게다가 금융당국이 ‘맞춤형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시행 등 제2금융권의 대출 관리를 강화할 계획인 만큼 돈 빌리기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경우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 연체율 기준을 상향 조정해 대출심사를 더욱 엄격히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현재 저축은행은 ‘정상 채권’ 0.5%, ‘요주의 채권’ 2%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더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은행은 정상 1%, 요주의 10%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다.
연체율도 저축은행은 ‘연체 2개월 미만’ 자산은 ‘정상’, ‘2~4개월 미만’은 ‘요주의’로 분류한다. ‘연체 1개월 미만’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은행보다 여신 건전성 기준이 느슨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에 비해 저축은행은 충당금 적립 수준이 많이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화하면 저축은행은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니까 대출이 기존보다 더 까다로워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에 이어 제2금융권까지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상환 리스크가 점점 커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서민층은 높은 대출 금리를 부담해서라도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면서 “투기 지역에 쏠리는 부동산 양극화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서민 대출 옥죄기를 한다면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은행권 정부의 외과 수술식 땜질 처방에 눈치만 보고 있다. 저금리 속 대출 증가가 실적 개선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주담대는 지난 9월에만 3조 원 이상 증가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기업은행 등 6대 은행의 9월 말 주담대 잔액은 374조6017억 원으로 8월(371억5049억 원)보다 3조968억 원 늘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서 월별 증가세는 소폭 둔화됐지만 대출 잔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수요를 끌어오기 위한 금리 인하 등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며 “수익과 리스크 관리 측면을 두루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담대는) 주택 공급 측면의 규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자금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서민 대출을 틀어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