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최대 권력형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선 최순실 씨 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최씨에게 연설문 작성 등을 도움 받은 사실을 밝히며 청와대 내부문서가 외부유출 됐음을 직접 시인했다. 하지만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약 2분간의 해명에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25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최순실 씨에게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자인했다. 또“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대통령이 도움을 받았다는 시점은 취임 직후까지인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나 JTBC 보도 문건에 따르면 최씨는 2014년에서 2015년까지도 연설문을 받아 수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시점에서 차이가 난다. 최씨가 설립ㆍ운영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의 이성한 전 사무총장도 지난해 10월부터 적어도 올해 4월까지는 최씨가 ‘비선 모임’을 함께 하며 ‘대통령 보고자료’를 열람했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일부 표현’에서 조언을 구했다지만 최씨의 사무실에서 버려진 PC에서는 대통령 연설문이 44개나 저장돼 있었다.
최 씨에게 의견을 들었던 방법이 문건인지, 전화인지도 분명치 않다. 최씨가 직접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원고를 전달한 이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전 사무총장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비선모임에 거의 매일 밤 청와대 수석들의 대통령 문건을 최씨에게 들고 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꼬리를 무는 의혹과 논란은 이 뿐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ㆍ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씨가 이른바 ‘비선실세’ 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국정이나 인사까지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최씨의 측근 사무실에서 ‘민정수석실 추천인 및 조직도’라는 제목의 문서가 발견되면서 최씨가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 개입하고, 민감한 외교·안보 정보가 담긴 문건도 사전에 받아봤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이처럼 최 씨와 관련된 의혹이 점점 사실로 확인되면서 국정 관리 차원에서 후속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는 침묵을 지켰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의 후속조치로 대통령 탈당이나 개각, 청와대 인사개편 등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보좌 시스템이 갖춰진 후에도 최 씨가 연설문 작성이나 홍보 등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온갖 의혹들이 쏟아져 나와서 하나하나에 대해 다 말할 수 없다”면서 “드릴 말씀이 있으면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