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인 최순실 씨가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최순실 블랙홀’에 빠졌다. 국정은 사실상 마비됐고, 새해 예산안, 민생 법안 처리 등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5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26일부터 28일까지 예산안 종합정책질의를 이어갔다. 하지만 예산안을 두고 다퉈야 할 예결위 회의장은 최순실 의혹 추국장으로 변질됐다.
새누리당 김선동 의원은 전날 예결위에서 “여당도 (최순실 게이트를) 특검에 맡겨 수사하고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도록 야당과 함께하고 있다”면서 “지금 국민이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국정 운영이 마비되거나 작동이 안 되면 커다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자제 노력에도 최순실과 대통령 때리기는 계속됐다. 내년 예산안을 설명해야 할 황교안 국무총리는 하루 종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고, 청와대 이원종 비서실장과 김재원 정무수석 등도 불려 나와 진땀을 뺐다.
예산안 예비심사를 하려 했던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예산 대신 최순실 공방에만 몰두했다. 여당은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의 핵심 증거인 태블릿PC의 실소유주를 밝히는 데 집중했고, 야당은 최순실의 국내 소환 문제를 파고들었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은 28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새누리당 대국민 석고대죄, 최순실 부역자 전원사퇴 등 3대 선결조건이 이뤄져야 협상을 하겠다며 최순실 특검 협상을 중단했다.
예산안 심사와 동시에 진행했어야 할 법안 심사도 멈춰 섰다.
국회에는 28일 오전 기준 2797개의 법안과 28개의 동의안, 41개의 결의안 등 2875개 안건이 계류 중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개혁 4법과 일자리 창출 법안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 다수의 경제 살리기 법안이 포함돼 있으나,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특히 20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5개월 동안 자유무역협정(FTA) 지원법이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것 외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어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지금처럼 대형 이슈가 많은 상황에서는 법안 심사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