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참 이상하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88만여 가구의 주택이 공급됐고 이중 아파트가 53만5000가구나 쏟아졌는데도 분양시장은 여전히 활기차다.
이렇게 많은 아파트가 쏟아져 나왔는데도 올들어서도 8월까지 분양된 아파트는 32만1000가구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연간 실적은 지난해 수준은 될 듯싶다. 하반기들어 매달 6만~7만 가구가 주인을 찾고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분양 현장은 여전히 뜨겁다. 일부 인기없는 지역 말고는 대부분 1순위에서도 경쟁이 심하다.
현재 ‘아파트 투유’ 사이트에 올라있는 71곳의 분양 물건 가운데 순위내 미달 현장은 2~3곳에 불과하다. 전남 여수권이나 경북 구미와 같은 곳에서 거뜬히 1순위 완판에 성공했다.
그동안 공급물량이 많은 경기도 광주시 태전리같은 곳에서는 2순위까지 밀려났다.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인데다 힐스테이트라는 브랜드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대성황을 이루지 못했다. 인기가 높았던 인천 송도의 분양 현장도 예전같지는 않다. 10월 중순에 분양한 동일하이빌은 2순위에서 수요자를 채웠다.
그러나 공급과잉 우려가 많은 동탄신도시는 여전히 건재하다. 부산의 분양분 3건도 잘 마무리했다.
경제 상황이나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주눅이 들만도 한데도 아파트 분양 현장만은 건재하다. 최순실 때문에 나라가 시끌벅적한데도 말이다.
더욱이 2년 전 분양 분이 올해 말이나 내년초부터 입주를 시작하게 되면 주택시장이 냉각될 여지가 많은데도 사람들은 계속 분양현장으로 몰려든다.
왜 그럴까.
우선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 일단 당첨만 되면 그만큼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수요가 많아서 그렇다.
당첨만 되면 그 자리에서 몇 천만원의 웃돈을 부쳐 분양권을 되팔 수 있다면 누가 덤비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그랬다.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싼 아파트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수요 또한 분양시장을 달구는데 한몫했다.
지금 분양가가 좀 비싸도 나중에 가격이 오른다는 보장만 있으면 웬만하면 분양을 받으려 할 게 아닌가.
여기다가 헌집보다 새집의 가치가 자꾸 높아지고 있어 새 집에 살고 싶어하는 수요도 가세한다.
집값을 부추기는 세력도 있다. 이들은 돈주고 매집한 청약통장으로 청약을 하거가 분양권 자체를 거둬들인다. 1000가구 분양 현장에 수십억원만 풀어도 분양권 값은 천청부지로 치솟는다. 가격을 잔뜩 올려놓고 ‘먹튀’를 한다. 이는 2000년대 중반에 등장했던 수법이다. 당시 Y모·K모씨를 비롯한 10여 명의 투기세력들이 수백명의 투자자를 이끌고 버블세븐지역을 휩쓸었다.
최근 강남·여의도·목동권 재건축 단지 아파트값이 치솟는 것도 이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한 세력은 돈 많은 은퇴자들이다. 안정적인 수익상품을 찾는 이들은 요즘같은 시절에는 부동산이 최고라며 아파트를 사들인다. 대기업 임원 출신 가운데 수십억원의 여유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임대 수요가 풍성한 지역의 아파트를 투자 타킷으로 삼는다. 웃돈을 주고라도 분양권을 대거 사들인다.
최근 분양권 전매율이 20~30% 되는 것도 아마 돈 많은 은퇴자들의 투자 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들 덕에 신규 분양시장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분양권을 사들이는 수요가 있으니 분양현장은 더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다음 부동산중개업자들의 개입이다. 아파트 분양을 하기 전에 관련업체는 주변 중개업자부터 접대를 하는 게 관행이다. 미달 분은 중개업소로 넘어간다. 이들은 중간에 웃돈을 붙여 수요자를 찾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집값은 오른다.
다 먹이 사슬이다.
이런 먹이사슬 가운데 가장 취약한 게 실수요자다. 막차를 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막차를 탈 가능성은 더욱 크다. 다른 먹이사슬들은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쉽게 빠져나오지만 순진한 실수요자는 그냥 당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이런 먹이 사슬 세력들의 영향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 입주물량이 쏟아져 나오면 힘을 잃게 된다. 물량 앞에는 장사없다. 지금까지의 물량은 완공 품이 아니어서 시장에 영향을 덜 미쳤다. 입주 물량 과잉으로 빈집이 속출하게 되면 급매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근래들어 송파 문정권에는 대우 하비오 물량 약 4000가구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주변 아파트 전셋값이 하향세다. 새집의 전세가 더 싼데 헌집에 살려고 하겠는가. 위례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초창기에 전세가 싸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오래가면 집값도 떨어진다.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더 싼 곳으로 이주하는 수요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미 다가구·다세대주택 시장에는 빈집이 속출한다. 더욱이 원룸 오피스텔은 공급과잉에 몸살을 앓는다. 월세가 떨어지고 공실기간이 늘어난다.
다 공급물량이 넘쳐나서 그렇다. 아파트와 달리 공사기간이 짧아 입주물량이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부터 넘쳐났다. 지난해만해도 이들 주택이 28만2000가구 정도 공급됐고 올들어서도 8월 현재 18만8000가구가 쏟아졌다. 서울도 지난해 6만3000가구, 올해 3만6000가구가 허가됐다.
여기다가 원룸 오피스텔까지치면 원룸이나 투룸 물량도 엄청나다. 2년 동안 줄잡아 60만가구가 출하됐으니 공급이 넘쳐나지 않을 수가 없다.
공사기간이 좀 긴 아파트시장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과잉 여파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역에 따라 그 강도는 매우 달라지게 마련이다.
심한 곳은 거의 쓰나미 수준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