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60) 씨의 재단 강제모금과 관련해 돈을 낸 대기업 관계자들의 줄소환이 현실화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한 기업 위주로 수사가 진행되면서 진척 상황에 따라 일부 기업 총수가 검찰에 출석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9일 한진그룹 김모 전무, 포스코 정모 전무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전날에는 LG 이모 부사장, CJ 조모 부사장, 한화 신모 상무, SK 박모 전무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차은택(47) 씨의 지분강탈 사건이 연관된 포스코를 제외하면 총수가 박 대통령과 직접 면담한 기업들이다. CJ의 경우 청와대가 이미경(58)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이 기업 대상 수사 과정에 경제적인 파장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박 대통령과 독대하거나 면담한 모든 총수를 소환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신 기업 관계자를 통한 대리 조사를 벌이고, 혐의가 불거져 나온 일부 기업의 총수만 선별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기업들이 낸 출연금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기업들이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이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없지만,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에 따라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뇌물이 되고, 직접 면담한 총수는 '공여자'로 검찰에 나와 조서를 작성하는 게 불가피하다. 통상 뇌물죄 수사에서 돈을 건넨 공여자의 진술을 확보한 뒤 수뢰자를 부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 조사 전 기업 총수가 먼저 포토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검찰은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수사를 염두에 둔 밑그림 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이재만(50)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50)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자택 등 4곳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와 업무일지 등을 확보했다. 구속된 정호성(47)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대통령 조사 일정과 방식이 구체적으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간담회를 열고 “한류를 확산하는 취지에서 대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주문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 당일과 다음날 7명의 기업 총수와 차례로 면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 포함됐다. 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