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내 공부, 내 돈으로 해야

입력 2016-11-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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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밖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매년 수능 때가 되면 텔레비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뉴스다. 전국의 사찰과 교회, 성당에서 100일 기도다, 30일 기도다 해서 자식들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린다. 영험이 있다는 기도 명소를 묶어 관광상품으로 내놓는 여행사도 나타나고, 합격을 기원하는 보신각의 타종행사에도 신청자들이 쇄도했다고 한다.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의 절절한 심정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대학 입시에 온 가족이 목을 매는, 조금도 식을 줄 모르는 우리의 입시 풍토가 안타깝기만 하다.

고졸 학력으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근무하다 결혼한 뒤, 두 아이까지 데리고 유학을 떠났었다. 중견기업의 대표이사로 근무하면서 경영대학원에 다녔고 회사를 사직한 뒤에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대학교의 부총장직을 내려놓은 뒤, 올해 다시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사학위가 있는데 또 무슨 공부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내가 좋아서 한 공부였다. 나도 한때는 “인생에 공부가 다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공부는 안 하고 시를 베껴 쓰며 농땡이 부리던 때도 있었다.

살아 보니,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를 늦게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인데 배우는 즐거움을 왜 그렇게 일찍 빼앗아 버린 걸까, 화가 났다. 사이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배운 것이 많았다. 직장인으로, 주부로, 육십을 넘긴 할머니와 은퇴한 대학 교수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밤을 새우는 열정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자기 돈 내고 하는 게 진짜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 안 하겠다고,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는 자식을 어르고 달래서 억지로 대학 보내는 것이 유일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부모를 위해 공부해 주고 대학 가 주는 것처럼 착각하는 자식도 많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직후 꼭 대학에 진학해야만 하는 것일까? 살다 보면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생기는 법이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 때라는 게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시기가 아닐까?

2007년 한국을 방문한 미래 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 중퇴는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스티브 잡스도 얘기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현대의 정주영 회장, 이세돌, 서태지, 유재석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고 있는 요즘,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에 가야만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일류대학이나 인기학과만 고집하던 시대는 지났으며 자식의 출신 대학이나 직업, 사위나 며느리의 직업으로 자식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도 아니다.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 부모를 위해서 하는 공부, 남들 따라 유행처럼 하는 공부, 취업이 안 되니까 부모 돈으로 하는 대학원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가 즐거움인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밥을 먹고살 수 있는 세상, 전문가로 성공해 우뚝 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수능이 끝났다. 하지만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이 인생의 수능인 셈이다. 사회에 진출하는 시점의 성적이나 출신 대학으로 인생의 성패를 단정 짓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 우리 아이들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고 믿고 기다려 보자. 우리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공부나 성적보다 지금 내가 챙겨 주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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